이전과 다른 영어공부: ‘슬로 러닝(slow learning)’을 꿈꾸며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슬로 푸드’는 “패스트 푸드(fast food)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지역의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나 식재료를 다시 검토하는 운동 또는 그 식품 자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슬로 리딩은 속독에 대응되는 말로 정보를 취하기 위해 책을 빠르게 읽어내는 속독이 아니라 책의 구절을 음미하며 다각도로 해석하는 독서법을 의미하죠. 속도와 마감에 쫓기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먹는 행위, 읽는 행위를 바꾸어나가려는 슬로 푸드, 슬로 리딩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표현들에 상응하는 의미로서의 “슬로 러닝”은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여전히 학습의 만트라는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많은 것을’이지요. 학습을 다루는 일부 심리학 분과에서 slow learning이라는 용어가 발견되지만 위의 ‘슬로 푸드’나 ‘슬로 리딩’에서 ‘슬로’가 갖는 함의를 지니진 않습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는 ‘느린 공부’를 지향합니다. 시험을 위한 영어, 스펙을 위한 영어를 넘어 읽고, 말하고, 곱씹고, 성찰하고, 소통하고, 반성하는 영어를 꿈꿉니다. 영어학습에서의 ‘슬로 러닝’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활동으로 나아갑니다.

첫째, 발음공부 즉 ‘소리내기’ 활동에 더해 ‘소리 느끼기’ 활동을 실시합니다. 안면의 근육과 혀의 움직임, 목의 떨림에 민감해져 봅니다. 소리와 이미지, 느낌을 연결시킵니다. 자음 모음을 구별하는 일을 넘어 소리의 자질 자체에 집중하는 듣기를 실시합니다. 코가 간질간질해지는 소리 내보기도 하고 목젖이 떨리는 소리를 골라보기도 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일은 언제나 소리에 감응하는 일임을 기억합니다.

둘째, 한 주에 수백 개의 단어를 외우게 하는 ‘단기 속성’ 학습 방식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단어와 나, 단어와 세계의 관계를 곰곰히 생각하며 사고의 지반을 다지는 ‘장기 숙성’ 단어공부를 지향합니다. 단어의 외연적 의미를 넘어 함의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한국문화와 타문화를 넘나들며 두 언어간의 어휘 네트워크 비교해 보기도 합니다. “의미있는 단어는 의식의 소우주”라는 러시아의 발달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의 말처럼, 말 속에서 세계를, 우주를 발견하는 힘을 기릅니다.

셋째, 의미의 단위로서의 문법을 배웁니다. 다양한 세계에 대응하는 조동사(modals), 세계를 감추는 수동태, 우주의 시간과 언어의 시간 등에 대해 생각하면서 문법과 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합니다. 텅 빈 구조가 아니라 의미를 생산해 내는 잠재력으로서의 문법을 익혀갑니다.

넷째, 유창성(Fluency)은 그 자체로 지상 과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또박또박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천천히 말하기를 실천합니다. 빠른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과 함께 ‘답답할 정도로 느린’ 이야기를 경청하는 능력을 키워갑니다. 술술 말하지 못해도 마음을 전달할 수 있고, 조금 서툰 말 속에서도 감동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빠름에 대한 동경만큼 느림에 대한 인내를 키워갑니다. 능숙함에 경탄하는 만큼 조곤조곤한 대화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갑니다.

다섯째, 언어능력의 성장을 갈망하듯 자신이 변화하는 모습을 고대합니다. 새로운 말들이 내 안에 쌓임과 동시에 나 자신이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학습을 모니터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을 응시하고 세계와 대면합니다. 말의 풍경이 바꾸는 세계의 풍경에 기뻐합니다.

이렇게 천천히, 조금씩, 오래, 함께 걸어갑니다. 전력질주가 아닌 돌아봄과 성찰로 나아갑니다. 농담과 유머, 상처와 희망을 나누며 오랜 벗과의 산책같은 시간으로 공부를 채워갑니다. 언어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속도로 언어를 제어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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