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 단상 (2018.11.)

Posted by on Nov 25,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강사법의 여파인지 이번 학기말은 유난히 고요하다. 여느 때처럼 강의는 막바지로 가고 나는 방학 동안의 생존을 계획한다.

밥먹고 산다는 핑계로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은 조금 희미해졌다. 물론 게으름과 능력부족이 더 큰 원인이지만, 그냥 ‘밥먹고 산다고’라고 말하는 게 좋겠다. 그게 무난하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지도 않으니까.

연구자로서의 삶을 크게 동경해 본 적은 없다. 대학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 부러웠던 적도 없었다. 다만 학기마다 돌아오는 조금 귀찮은/구차한 일들이 힘겹긴 하다. 6년 여의 반복도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진 못한다. 익숙해지지 않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가르치는 건 좋다. 대학에 여전히 발을 담그고 있을 수 있는 건 나를 믿어준 선생님들 덕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함께하는 학생들 덕분이다. 구원은 늘 교실에 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 초초안을 완성했다. 조금 고치면 초안이 되고, 조금 더 다듬으면 세상에 내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부터 두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전공과 관련된 모임 하나, 순수한 책수다 모임 하나. 책을 읽고 떠드는 모임은 언제나 좋지만, 이 두 모임은 정말 좋다. 성과 따위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이야기에, 사람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왜 더 일찍 시작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학기가 끝나면 구원은 휘리릭 사라진다. 세상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방학엔 쉼과 탈-구원이 오묘히 공존한다.

예전처럼 쉬지 않고 일할 수는 없게 되었다. ‘저질체력’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완급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 해 내내 질주하는 삶을 사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질주하지 않는다고 주저앉은 건 아니다.

짝에게 물었다. “혹시 다음 학기에 강의가 안들어오면.” 그가 웃으며 말했다. “집안 일 열심히 해.” 둘이 한참을 웃었다. 먹고 사는 걱정은 미친듯이 웃은 다음에 해도 된다.

학생들과 <Bowling for Columbine>과 <Elephant> 토론을 진행했다. 눈물나게 재미있었다. 말 그대로다.

부조리한 세상과 못난 내가 씨줄과 날줄로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벽을 만든다. 학생들의 눈빛이, 친구들과의 소소한 수다가, 무엇보다 유머가 그 벽에 균열을 낸다. 새어 들어오는 빛으로 다시 세상을 분간한다. 자리를 찾아간다.

삶을 사랑할 순 없을지라도 순간순간을 사랑할 순 있다.
그걸로 족하고 그래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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