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예술과 예술가는 분리될 수 있는가?

Posted by on Dec 17, 2018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 No Comments

 

예술가와 예술은 분리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미 세상에 뛰쳐나온 작품을 예술가의 내부로 다시 귀속시킬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대중과 비평가에 의해 소비, 비판되고 수용 또는 배척되며 이 와중에 예술가가 직접 개입할 여지는 매우 적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역사적 관점에서 예술의 탄생 과정을 살핀다면 예술가와 예술을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엑스 마키나’으로 태어나는 예술작품은 없다. 예술은 언제나 특정한 사회 내의 인간을 통해 존재하게 된다.

나는 오로지 전자에 골몰하여 ‘예술을 도덕과 윤리의 잣대에 가두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만이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예술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만큼, 예술작품의 구상과 탄생, 사회적 확산의 과정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OOO와 그의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보다는 “어떠한 사회구조적, 문화적 힘이 OOO가 자신의 삶과 작품을 분리할 수 있다고(혹은 없다고) 믿게 하는가?”가 더 근본적인 질문이 된다.

1인칭의 관점에서 예술가와 작품은 떨어질 수 없다. 필자와 이 글이 떨어질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예술작품이 분리될 수 밖에 없다고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대로 다른 이들은 왜 특정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길 거부하는가?

예술가와 예술을 떼어놓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그 둘을 떼어놓고 사고할 수 있는가? 예술작품과 예술가를 완전히 떼어놓을 수 있다면 왜 우리는 작품과 예술가의 이름을 늘 붙여놓는가? “OOO은 싫지만 OOO의 작품은 맘에 들어”라는 언어구조가 한 문장을 이루어 자연스럽게 쓰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술가와 작품을 떼어놓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서로 다른 예술장르에 같은 무게로 적용될 수 있는가? 혹 성폭력범이 쓴 ‘아름다운’ 동시와 연쇄살인마가 작곡한 ‘피아노 소품’은 같은 방식으로 분리되거나 분리될 수 없는가? “예술가와 예술을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너무 뭉툭하여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더 정밀한 질문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에 오래된 언어구조를 붙잡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근본적으로 왜 우리는 이 모든 문제를 개인의 판단에 귀속시키기 보다는 공공영역의 논쟁거리로 삼는가?

덧. 현재수준에서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내놓았다고 해보자. 그 경우 “나는 그 인공지능은 마음에 안들지만 작품은 마음에 들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공지능과 인간에 대한 판단을 갈리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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