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영어공부를 위해 넘어야 할 세 가지 장벽

(전략)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갖는 위상과 권력을 생각해 볼 때, 영어학습의 역사를 돌아보는 글이 성공과 실패, 투자대비 성과, 원하는 수준에의 도달 혹은 미달 등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흥미와 재미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점차 성적과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가 되는 현실에서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는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누구나 다 하는’ 영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쓰라림 또한 떨쳐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세상은 ‘왜 여태껏 그 실력밖에 안되느냐’고 계속 말하고 있지요.

“삶이 영어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영어에 끌려가는 삶.
한국사회의 영어공부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삶을 위한 영어공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기 보다는 힘겹게 올라야 할 사다리가 되어버린 영어, 삶을 즐겁고 풍요롭게 하기 보다는 불안하고 팍팍하게 만들고 있는 영어에 대해 고민하면서 붙들게 된 질문들입니다. 우리가 영어공부의 주인이 되기 보다는 끊임없이 사회와 제도가 요구하는 영어를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화두이지요.

오랜 시간 영어교육과 응용언어학을 연구하면서 한국사회의 영어공부를 관통하는 주요 현상으로 주목한 것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경험보다 입력(input)을 우선시하는 영어공부입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하나인 비트겐슈타인이 간파했듯이 언어의 한계는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행위는 단지 새로운 발음과 문자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세계의 경계를 깨뜨려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행위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영어교육은 영어를 통한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를 추구하기 보다는 ‘영어정복’을 위한 끊없는 전투를 강요합니다. 최대한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많은 언어입력을 받아 고지에 도달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단어에 숨겨진 문화와 느낌을 탐구하기 보다는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아이템을 암기해야 하고,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기 보다는 다양한 문제 포맷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어떻게든 빨리 영어공부를 시작해 아이들의 영어 노출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팽배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어를 공부하면 할수록 이 세계의 질서에 더더욱 순응하게 됩니다. 또다른 세계로의 탐험이라는 이상을 철저히 배반하는 아이러니를 낳는 것입니다.

이제 영어공부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얼마나 일찍, 얼마나 자주 영어에 노출되느냐가 아니라 영어를 공부하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따져물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영어를 공부하느냐가 아니라 공부한 바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하느냐를 고민해야 합니다. 익혀야 할 단어와 문장의 수에 앞서 외국어 공부를 통해 얻게 될 경험의 풍부함에 대해 숙고해야 합니다.

돌아보면 영어를 더 오래 공부하지 못한 게 후회되진 않습니다. 영어를 더 재미있게 공부하지 못한 건 여전히 아픕니다. 더 재미있게 했다면 훨씬 잘했을 거라 확신합니다. 공부의 양이 아니라 경험의 깊이가 말을 알게 합니다.

두 번째는, 학습자가 공부의 주체가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 대상이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공부는 지식을 쌓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세워가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독서의 목표가 책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학교교육이 목표하는 바를 학교 안에서 이룰 수 없듯이 공부를 통해 이루려는 바는 언제나 삶의 실천에 있습니다. 영어공부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영어공부는 삶의 실천을 주도하는 주체로서 자신을 성장시키기 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안는 모양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많은 이들의 머리 속에는 정형화된 교육과정이 존재합니다. 5세 쯤 되면 파닉스를 해야 하고, 이후에는 코스북으로 말하기를 배웁니다. 이후에는 단계별 읽기자료를 공략하고, 다독 프로그램에 입문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문법을 좀 해줘야 하고, 중학교에 가면 내신대비 수업을 듣습니다. 중학교를 마칠 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수능 대비 문제풀이에 임합니다. 물론 영재고나 특성화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이 모든 것에 더해 고교입시에 특화된 학원을 다녀야 합니다. 대학에 가면 취업을 위한 영어공부에 매진해야 하고, 이후에는 승진과 고과를 위한 의무를 채워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점수를 따고 석차를 부여받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공부를 계획하고 실행하며 때로 과감히 다른 길을 선택하는 자율적 주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링컨의 게티스버스 연설의 한 토막을 빌리자면 “우리 자신의, 우리 자신에 의한, 우리 자신을 위한” 영어공부를 추구하기 보다는, ‘영어는 기본’이며, ‘세계화 시대, 누구나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사회의 압력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타인과 자신을 지속적으로 비교하게 되고, 때로 떨쳐내기 힘든 불안과 좌절감으로 이어집니다. 영어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서의 삶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영어 때문에 받는 다양한 스트레스 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것은 ‘네이티브’ 즉 영어 원어민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도 저만치에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네이티브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서 있습니다. 자신이 이룬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할 순간, 어김없이 영어에 대한 열등감이 고개를 듭니다. ‘네이티브처럼 영어하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조금만 생각해 봐도 합리적이지 못한 반응입니다. “왜 저 외국인은 나처럼 한국어를 못할까”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끊임없이 “왜 당신은 네이티브처럼 못합니까”라고 속삭입니다. 우리 또한 이런 그릇된 사고의 희생자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학습의 목표는 ‘도달할 수 없는 네이티브’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나’가 되어야 합니다. 완벽한 연주에 집착하기 보다는 매일 조금씩 다른 변주를 시도하는 것. 그것이 새롭고도 건강한 말을 가능케 합니다.

세 번째는, 공부의 기쁨을 쌓아 조금씩 성장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욕망입니다.

자전거나 수영이 그렇듯 영어 배우기도 기능(skill)을 익히는 일입니다. 뇌에 새로운 문법과 어휘지식을 쌓아야 하고, 안면 근육, 구강, 혀, 호흡기관 등을 통해 발화하는 법을 익혀야 하죠. 읽기와 쓰기 등 리터러시를 익히는 일도 만만찮습니다. 그렇기에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런 당연한 사실을 망각합니다. 오랜 시간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애써 외면하기도 하죠. 각종 광고는 이런 ‘허약한 마음’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영어회화 O주 완성”이나 “스피킹 O주만 하면 네이티브처럼 된다”는 문구로 어떻게든 쉽게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얄팍한 마음을 파고드는 것입니다. 최소 투자에 최대 수익이라는 투자 슬로건이 영어공부의 금과옥조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하지만 영어를 단기간에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친구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와의 사귐 속에서 다양한 경험, 재미, 깨달음, 새로운 문화적 체험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영어와 함께 놀고, 떠들고, 감동받고, 박장대소하고, 농담을 주고받는 데서 삶의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체화한 언어학습자로 ‘빨간머리 앤’이 떠오릅니다. 누구보다 깊이 세상과 호흡하는 그는 낱말 하나에 가슴뛰어 잠못들고 자신만의 말들로 이야기에 날개를 답니다. 반짝이는 단어들을 수집하고 길가 나무에 이름 하나도 허투루 붙이지 않지요.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건 그의 말에서 끝도 없이 솟아나는 상상의 세계입니다. 그의 말공부에는 세계에 대한 경탄이 녹아 있습니다. 삶과 언어가 혼연일체가 된 곳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같은 ‘상상의 복원’이야말로 영어라는 친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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