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에 대한 착각

“모든 매체에는 의사소통의 측면에서 고유의 변증법이 있다. 즉 매체는 그 매체를 통해서 소통하는 것들을 연결하고 분리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바로 이 변증법이 매체(medium)라는 개념의 정확한 의미이다. 그러나 정보전달의 과정에서 그것의 존재가 망각되는 매체들(이른바 면대면 매체)이 있다. 예를 들어 원형 탁자에서 대화를 할 때, 이 탁자의 존재는 잊히고, 나아가 우리가 그것을 통해 말을 하고 있는 공기의 존재도 잊혀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몸이 서로 닿지 않는데도 직접적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 언제나 잘못된 — 인상을 받는 것이다. 이런 인상이 잘못인 이유는, (모든 분석을 회피하는 신비적 합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적 소통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인상은 비록 잘못된 것일지라도, 그 의사소통을 만족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전화는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결코 잊히지 않는 매체이다. 이것은 전화의 기술적 성격 때문이 아니다. TV는 전화보다 훨씬 더 기술적인데,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잊는다. 불행하게도 이 점이 TV의 담론을 만족스럽게 만든다. 전화 연결망에서의 대화는, 그 대화가 대화를 중개하는 매체를 실질적으로 안보이게 하는 데 성공할 경우에만 비로소 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기술적인 도전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인 도전이기도 하다.” (빌렘 플루서, 몸짓들, 20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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