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는 언제나 자신을 통해 이해된다.

 

1. “상대의 말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2.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두 축이다.

3. 첫 번째 축은 상대의 발화를 상대의 말 속애서 이해하는 것이다. 화자가 ‘우정’이라는 말을 썼다면 청자는 ‘우정’이 발화된 맥락을 살피고 그 안에서 ‘우정’의 의미를 이끌어낸다.

4. 두 번째 축은 자기 자신이다. ‘우정’이라는 말이 이해된다는 것은, 이 말이 나의 세계 안에 이미 들어와 있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정’의 의미를 자신의 뇌 안에서 끄집어낸다.

5. ‘우정’은 이 두 축의 교집합에서 만들어진다. 상대가 의미하는 우정과 내가 이해해왔던 우정이 융합되면서 ‘우정’이 이해되는 것이다.

6. 소통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 두 축의 교집합이 커야만 한다. 교집합이 최소화될 때 화자의 ‘우정’과 청자의 ‘우정’은 서로 다른 의미가 된다. 조지 레이코프가 “누구의 자유인가?”에서 논의하듯 미국 민주당 리버럴의 ‘자유’와 공화당 보수파의 ‘자유’가 같을 수 없다.

7. 이 교집합의 생성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당장은 서로가 서로의 말을 열심히 듣느냐의 문제다. 흔히들 ‘경청’이라고 부르는 게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경청한다고 이해와 소통이 될 리는 없다. 화자와 청자의 언어가 터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기반이 완전히 다르다면 비슷한 단어를 쓴다 해도 그 의미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8. 단시간에 이 교집합을 늘릴 방법이 있을까? 회의적이지만 해야할 일들이 있다.

9.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상대의 말은 언제나 나를 통해 이해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나의 말 또한 언제나 상대를 통해 이해된다.

10. 그런 면에서 대화상황에서 화자는 청자의 말을 그대로 이해할 수 없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통해 이해한다. 마찬가지로 상대 또한 나의 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없다. 상대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쌓아온 지식, 태도 등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상대를 나라는 거울에 비추지 않고 볼 방법은 없다. 모든 이해는 듣는 사람으로 매개된 이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