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집중과 영혼

Posted by on Jan 25,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물론 서둘러 말하자면, 희망은, 무엇보다 당신의 ‘생각’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힘들여 배워야 할 타자적 지평인 것이다.” (903쪽)

“예의는 연극적이다. 그 힘은 연극적 일관성으로부터 추출된다. 그러나 가면이 역설적으로 고백의 매체인 것처럼 연극적 예의는 본심을 찔러든다. 허허, 본심이라니! 하면서 예의가 고소(苦笑)를 보일 듯하다. 가면과 고백을 서로 대치시키고 예절과 본심을 가르는 진지한 형이상학 혹은 윤리학은 바로 그 진지함 탓에 자중지란에 빠진다. 다시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연극적 삶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다.” (456쪽)

“인간은 자신의 세계와 구성적으로 상호의존의 관계를 맺는다. ‘장안 하늘에 뜬 한 조각의 달(長安一片月)'(이백)도 이미 시적 화자의 객관적 외부에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라는 주체는 외부를 ‘상황’이 되게 하고 대상을 의미의 초점으로 바꾼다. 나의 선택에 의해서 내 세계는 그 풍경을 바꾸고, 세계의 변화는 거꾸로 나의 주체적 개입을 재촉하며, 다시 이 개입은 내 주체의 성격과 지향을 재구성한다. 그런 뜻에서 인간의 장소는 동물의 텃세권과 다르고, ‘영혼’을 낳아놓는 인간의 주체는 자기보존에 적응된 동물의 통각(統覺)과는 다르다.” (55쪽)

또 하나의 ‘벽돌책’이 내 앞에 놓였다. <동무론> 이후 실로 오랜만에 김영민의 문장을 만난다. 처음 펼쳐든 페이지에서 ‘희망’에 대한 나의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나의 희망은 얼마나 얄팍한가. 또 얼마나 연약한가. 힘들여 배우지 않은 희망들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알처럼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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