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세이셔널의 두 극단

많은 경우 ‘센세이셔널’은 부정적 함의를 가지지만, 세상을 바꾸는 많은 것들이 센세이셔널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는 진중한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센세이셔널함이 센세이셔널리즘에서 오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정주의는 선정성을 겨냥하고 선정성을 믿으며 선정성을 갈망한다. 그렇게 선정주의가 성취한 선정성은 가볍고 허약하며 한시적이다. 선정성은 오로지 소비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선정성은 원칙에서도 파생될 수 있다. 원칙을 따라가는 일은 근본적이며, 근본적인 것은 과격하다. 과격한 주장은 어느 정도의 선정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선정성은 근본적인 것들로 인도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두 가지 선정성을 구별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후자의 선정성이 꼭 바람직한 것만도 아니다. 전자의 ‘얕은’ 선정성을 추구해도 논문을 써낼 수 있고 실적을 올릴 수 있다. 후자의 선정성에 이끌려 이론의 지층에서 헤매다가 세월을 ‘허송’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알 사람들은 다 안다. 센세이셔널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과 센세이셔널할 수밖에 없는 급진성을 가진 이들을.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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