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너’ -> ‘나+너’

‘뇌 신호의 기호학(the semiotics of brain signals, 내 맘대로 지은 이름)’이 부상한다고 해도 그것은 의미작용의 지층을 두터이 할 뿐 반박 불가능하며 객관적인 의미를 확정하진 못한다. 기호학자들의 분파로 “뉴로-“가 붙은 “neuro-semiotician”의 영향력이 커지겠지만 이 또한 기호학의 제문제에 대한 최종적 해결을 의미하진 않는다. 도리어 삼각검증(triangulation)의 대상이 늘어나 의미를 확정하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퍼스(Peirce)가 간파했던 세계와 의미의 차이는 지속될 것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은 제시(present)될 수 있지만, 의미는 제시될 수 없으며 오로지 재현(represent)될 뿐이다. 이러한 가정이 깨지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이 물리적으로/생물학적으로 병합(merge)되는 새로운 형태의 소통방식이 등장해야 한다. 의미작용의 지형이 ‘나/너’에서 ‘나+너’로 변화하는 순간 (언어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을 포괄하는 의미의) 기호학은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맞게 될 것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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