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 48: 문법 새롭게 보기 – 인지문법의 세계 (2)

언어의 자의성(arbitrariness)이란 단어의 생김새와 뜻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음을 말합니다. 필자가 지금 앉아있는 물건을 반드시 “의자”로 불러야 할 이유는 없으며 “chair”(영어) ㅎ혹은 “Stuhl”(독어)로 불러도 무방합니다. 누군가 공상과학소설을 쓰면서 같은 의미를 “%@87K”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언어의 자의성이란 언어의 형태(form)와 의미(meaning)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의자/라는 소리가 의자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것은 사회적인 약속이기 때문이지, 둘이 필연적으로 묶여있기 때문이 아닌 것이죠.

세계의 실체들은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물리적 실체 위에 그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꺼풀(언어)을 얹어서 이리 저리 조작하고 서로 공유합니다. 그리고 그 ‘꺼풀’의 세계를 발전시켜 또 다른 상징적 세계들을 계속해서 생산해 냅니다. 물리적 세계는 하나이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상징적 세계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가끔 세계의 소통이 이렇게 ‘관계없는’ 요소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언어의 본질, “Ghost in the shell”, 그리고 “the Construct”

어떤 의미에서 언어는 “ghost in the shell”과 통합니다. 이 표현은 SF의 한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攻殻機動隊)의 영문 제목에서 가져온 것으로, ‘껍질 안에 들어 있는 혼’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요. 여기에서 shell은 언어에 대응합니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의자’, ‘chair’, ‘Stuhl’ 등에 해당하는 소리 혹은 철자들은 그 자체로는 껍데기입니다. 그런데 이 껍데기 안에 개념이 담기게 됩니다.

여기에서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의자”라는 말 속에 이 세상 모든 의자들을 담을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개별적인 의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의자/는 ‘의자성(chair-ness, 의자를 의자이게 하는 성질들)’을 가진 모든 사물들의 집합을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개별적인 물리적 실체(개별 의자)이 아니라 일종의 ‘유령(ghost)’과도 같습니다.

세계라는 몸에 껍데기(shell)를 씌우고, 거기에 혼(ghost)을 집어넣어 세계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도록 한 것. 삼라만상과 그 운행, 나아가 그것에 대한 지식을 코드화하여 작디작은 뇌 속에서 ‘돌려볼 수’ 있게 만든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 언어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ghost in the shell”로서의 언어에 대한 가장 탁월한 유비(analogy)는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1편에 등장합니다. 모피어스(Morpheus)가 네오(Neo)에게 소개하는 컨스트럭트(The Construct)라는 세계가 그것입니다. 컨스트럭트에는 그 무엇이든 로딩(loading)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옷, 장비, 무기, 훈련 프로그램 등이 언급되지만 아름다운 계곡을 불러올 수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순식간에 생성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오래 전 추억도 소환할 수도 있죠. 그야말로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컨스트럭트는 하나의 완벽한 세계입니다. 물리적 세계와는 다르지만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 구조체인 것이죠.

문법과 대화, ‘컨스트럭트’의 로딩규칙 그리고 개입, 변형, 확장

문법은 ‘컨스트럭트’의 로딩규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컨스트럭트에 개념을 불러들일 때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하는지를 정하는 가이드라인인 셈이죠.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들이 어떤 위계와 순서로 로딩되어야 하는지를 정합니다. 영어라면 ‘주어+동사+목적어’ 순서를 근간으로 다양한 요소들을 로딩할 수 있습니다. 품사는 특정 요소가 어떤 위치에서 로딩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각각 형용사와 명사인 ‘good’과 ‘people’이 함께 올 때에는 ‘good people’의 순서로 로딩되어야 하고, 관사와 명사인 ‘the’와 ‘people’이 함께 올 때는 ‘the people’ 순으로 로딩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화를 통한 소통은 ‘여러 컨스트럭트의 교섭과 변형 그리고 확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화자는 자신의 컨스트럭트에 특정한 개념체계를 로딩하여 음성언어를 매개로 상대의 컨스트럭트에 보냅니다. 이를 받은 상대는 자신의 컨스트럭트 내에 대응하는 언어를 호출하여 반응합니다. ‘로딩’과 ‘전달’, 그리고 또 다른 ‘로딩’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주고받음이 반복되는 교섭 과정에서 두 사람의 컨스트럭트가 변형되고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변화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컨스트럭트는 대화를 주고받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컨스트럭트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어떤 세계를 로딩하고 있습니까? 어떤 정령(ghost)들을 초대합니까? 어떤 컨스트럭트와 상호작용합니까? 어떤 컨스트럭트와 충돌합니까?

이에 따라서 당신의 ‘실재(the real)’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엇이 실재입니까? 그것은 당신 자신이 결정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빨간 약을 먹을지, 파란 약을 먹을지가 주인공 네오(Neo)의 운명을 결정하지만, 사실 어떤 약을 고르느냐는 일생일대의 결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간순간 우리의 ‘컨스트럭트’를 조정하는 미세한 결정입니다.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언어를 고를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지,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고 어떤 생각을 버려야 할지를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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