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티브 중심주의에 대한 작은 깨달음

책을 쓰면서 작은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가 원어민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생물학적인 ‘한계’, 사회문화적인 ‘한계’, 교육환경의 ‘한계’라는 용어로 묘사하고 있었다. 우리가 처한 한계 때문에 네이티브가 될 수 없다는 식의 서술이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네이티브가 되지 ‘못한다’거나 ‘한계’라는 표현 자체가 원어민 중심주의의 산물임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한계’ 때문에 원어민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 원어민으로 영어 원어민들과는 다른 삶의 조건을 갖고 있는 것 뿐이었다. “미국인들은 생물학적,사회문화적, 교육환경적 한계로 한국어 원어민이 되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그 반대의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 자체가 영어를 우위에 놓고 있는 사고라는 게 확연해진 것이다.

한계를 논하는 순간 함정에 빠진다. 한계를 망각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영어 원어민이 되지 못하는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 원어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조건에 처한 것이다. 한국의 호랑이는 미국의 호랑이가 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저 한국의 호랑이일 뿐. #단단한영어공부 #삶을위한영어공부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