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지는 인류의 기억 그리고 ‘대리사회’

얼마 전에 소셜미디어의 프로필에 “독서는 OOO”이라고 써 놓은 분을 보았다. 저 OOO에는 유튜브 채널의 이름이 들어간다. 프로필의 주인은 해당 채널의 운영자가 아니다. 자신의 독서 정체성을 유튜브 채널로 표현한 것이다.

종종 해외 사이트의 ‘도서 요약 정리 서비스’를 접한다. 한국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다. 주로 경영경제 분야의 책을 다이제스트로 제공하는 형식이다. 이게 돈벌이가 되는 것 같다.

책을 대신 읽어주는 사회다. 영화도 리뷰 유튜버가 넘쳐난다. 독서보다는 강연에 이끌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잘 정리된’ 자료를 원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끔 궁금하다. 강연이 끝나면 연단 앞으로 와서 ‘파워포인트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시는 분들 중에 해당 자료를 곱씹고 공부하는 분이 얼마나 될까? 그냥 강연자와 몇 마디 의미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더 나은 선택 아니었을까?

김민섭 작가께서 생생하게 그린 ‘대리사회’와는 다른 측면에서 대리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아니 이미 널리 퍼져 있는 것도 같다. 점차 콘텐츠의 원본이 아니라 그 요약본, 많은 경우에는 조악한 ‘시뮬라크르’가 대중의 곁에 선다. 그것은 힘들이지 않고 소화될 수 있다. ‘공부’는 딱딱하다. ‘컨텐츠’는 부드럽다.

구글북스 N그램 프로젝트의 전반을 다룬 <Uncharted>(한국어 번역서는 ‘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에 따르면 인류가 특정한 발명품이나 현상에 대해 기억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한다.

특정한 발명품이나 개념이 등장하고 각종 책에서 인용되는 빈도가 정점이 될 때까지 시간이 짧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인용 횟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시간 또한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빠르게 유행하고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은 포털의 ‘인기검색어 순위’일 것이다. 아침에 1위하던 것이 오후면 한참 밀려나고 다음 날에는 순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는 현상 말이다. 대중의 주의를 자원으로 하는 경제(attention economy)는 속도의 경제이기도 하다. 마음에 들건 안들건 속도는 망각과 짝을 이룬다.

정보가 많아지면서 더 많은 정보를 소화해야 할 필요가 생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에게 그토록 많은 정보가 필요할까? 혹시 뒤쳐지지 않으려는 욕심, 낙오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지식에 대한 ‘허세’ 때문에 과식을 해대면서도 정작 필요한 자양분은 공급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던바의 수’에 따르면 사람이 친밀하게 교류하면서 깊은 유대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은 150명 정도라고 한다. 페북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과 ‘친구’를 맺지만 진짜 친구가 되는 경우는 상당히 작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관계가 팽창해도 인간의 사회성을 담당하는 뇌는 순식간에 ‘업그레이드’ 될 수 없다.

지식과 정보는 어떨까? 대신 봐주고 대신 읽어주고 대신 감상해주고 대신 비평해주는 ‘대리사회’는 어떤 득과 어떤 독을 가져다 주고 있을까? ‘읽고 치우는’ 독서가 아니라 ‘치우고 읽는’ 독서가 필요한 때는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리터러시의 외연과 기능을 확장하는 것만큼 정보와 지식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새로운 리터러시를 무조건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모드의 리터러시, 광범위한 지식과 정보의 유통, 새로운 사회문화적 환경에서의 비판적 관점 등을 아우를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더 빨리 소비하고 더 빨리 망각하는 삶을 긍정하기엔 정성을 다새 생산하고 더 끈질기게 기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멀티리터러시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