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의 부상과 전통적 리터러시

 

인류의 역사에서 읽기는 기껏해야 수천 년 지속되어 온 관행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읽기가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구텐베르크 은하계 이후의 일로 몇백 년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사실 한국에서 리터러시가 대중화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길게 잡아야 20세기 초 정도로 보아야 한다.

듣기와 말하기는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능력이지만 쓰기와 읽기는 그렇지 않다. 철저히 문화적인 산물이며 학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문자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글자가 없어도 살아가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유튜브의 부상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인류 역사상 짧디 짧은 읽기의 시대가 말하기에 ‘지분을 넘겨주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테크놀로지가 전혀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기 보다는 말하고 듣기만큼 오랜 경험을 이전에 가능하지 않았던 스케일로 펼쳐놓은 것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느끼듯이) 언급한 지분의 이양 속도가 예상 외로 빠르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활자 미디어의 죽음을 논하는 것은 과함을 넘어 엄살에 가까운 일이지만, 새로운 세대들이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동영상 플랫폼에 급속히 포섭되고 있다는 점은 반박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종종 놓치는 것들이 있다. 먼저 우리는 그 어떤 시대보다 메신저와 소셜미디어에 글쓰기를 많이 한다. 엄밀한 통계를 잡을 수는 없지만 글은 쇠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융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유튜브의 많은 영상들은 글을 기반으로 한다. 말의 외피를 입고 있으되 아이디어 수준에서 영상에 이르기까지의 중간 과정에서 다양한 텍스트들이 개입하는 것이다. 멋진 말의 기반에는 대개 깊은 글이 있다.

세째, 유튜브의 적지 않은 영상들은 ‘하이브리드 모드’이다. 말이 주요한 매체로 작동하지만 자막이나 참고자료 등에 문자가 상당히 많이 사용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유튜브를 마냥 ‘음성언어’로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고급’ 커뮤니케이션은 글로 매개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다. 멀티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논문을 내는 곳도 있지만 이는 예외중에서도 예외이다. 논문은 글로 구성되어야 하고, 이 글을 써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리터러시 훈련이 필수다.

이렇게 놓고 보면 ‘리터러시의 몰락과 음성/영상 플랫폼의 부상’이라는 구도는 허술하기 짝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 문자 기반 리터러시냐 유튜브 리터러시냐는 이분법 또한 현재의 상황을 적절히 포착하지 못한다.

거의 25년 전 Harvard Educational Review에 발표된 뉴 런던 그룹의 <멀티리터러시> 논문은 현재의 상황에 대해 여전히 유효한 시각을 제공한다. (밥먹으러 가야 해서 여기까지만)

#삶을위한리터러시 #유튜브리터러시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