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 범위를 넘어 깊이를 고민할 때

1. 여러 교과과정의 범위를 둘러싼 논쟁을 접하다 보면 너비만큼 중요한 깊이, ‘무엇’만큼 중요한 ‘어떻게’에 대한 논쟁은 거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타교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니 영어교과에 국한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오로지 시험을 위해 공부했던 탓인지 영어를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뿌듯했던 적은 별로 없다. 중고교 시절 누구보다 영어지문을 많이 읽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최선이 아니었음은 확신할 수 있다.

2. 적정한 범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범위를 지켜내는 일이 공부의 기쁨을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문법을 가르칠 것이냐 말 것이냐, 어디까지 가르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문법이냐가 더욱 중요하다.

3. 흔히 ‘기본개념’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가르치다 보면 여러 개념들을 빠르게 숙지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필연적으로 갈린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잘 못해도 좋아하는 학생’이 어쩌다 하나씩 있다는 것이다.

4. 나는 천문학을 잘 모른다. 기본개념도 그리 잘 아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밤하늘을 보고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좋아하고, 은하의 크기를 나타내는 광년을 들으면서 머리 속에서 유랑하는 빛줄기를 그려보는 것을 좋아하고, 인간의 머리로 상상할 수 없는 ‘심원한 시간(deep time)’을 상상해 보고자 하는 무모함을 사랑한다. 천문학의 개념들을 통해 먼지만도 못하지만 무한에 잇대어 있는 삶을 귀히 여기게 된 것이다.

5. 다시, 범위는 중요하다. ‘무엇’의 문제는 논쟁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학습자들을 어디로 이끌어야 할지에 대하여 좀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아는 것 만큼 느낄 수 있고, 느끼는 것 만큼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교과를 궁리해야 한다.

6. 이 시대의 영어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들 사이를 여행하며 깊은 소통을 갈구하도록 만들고 있는가? 말을 통해 삶을 사랑할 힘을 키워주고 있는가?

다른 교과들은 어떠한가?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삶을위한영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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