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언어학 이야기 49 – 관사 (1)

Posted by on Apr 22, 2019 in 수업자료, 인지언어학, 집필 | No Comments

문법 새롭게 보기 – 인지문법의 세계 (3)

“Everything should be as simple as it can be but not simpler!” (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실제보다) 더 단순하면 안된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아인슈타인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입니다. 저는 이 인용구를 볼 때마다 문법, 그 중에서도 관사에 대한 흔한 설명방식 중 하나를 떠올립니다.

처음 나오면 a, 그 다음 나오면 the (?)

중학교 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문법책에서 관사를 처음 접한 저는 복잡한 규칙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손을 들고 질문을 했죠.

“선생님, a랑 the랑 언제 써야 하는지 헷갈리는데요.”“그거 많이 헷갈리지. 근데 이것만 기억해. 뭔가를 처음 쓰면 a고 그 다음에 받을 때는 the로 받는 거야. 그러니까 바나나를 처음 말할 때는 a를 쓰고 그 다음에 그걸 다시 받으면 the를 쓰면 되지. 쉽지?”“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사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는 했지만 선생님의 답변이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문법책을 봤을 때 선생님의 설명과 벗어나는 예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천체를 나타내는 the moon, the universe, the sun 등의 표현입니다. 이들은 처음 언급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관계없이 ‘the’와 함께 쓰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정관사 the와 부정관사 a의 어원과 이에서 파생한 개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a와 the의 어원, 그리고 개념적 특성

영어사를 살피면 부정관사 a/an이 ‘하나’를 나타내는 말 one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는 “다수의 …”를 상정하고 (즉, an apple은 multiple apples가 있음을 전제하고), 이 다수가 이루는 집단(group)의 한 개체임을 표시합니다. 따라서 a/an의 경우 셀 수 있는 명사 앞에 나오게 되지요.

이에 비해 정관사 the의 주요 역할은 명사를 특정(to specify)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어원을 살핌으로써 그 의미를 보다 상세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The의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고대영어의 중성 지시어 þæt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정관사 the 뿐만 아니라 지시대명사 that으로도 진화합니다. 의미상 정관사 “the”는 ‘저것’을 나타내는 말에서 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정한다’ 함은 ‘콕 짚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화자가 사용하는 명사가 청자에게도 알려져 있어야 합니다. 청자가 모르는 명사를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가 ‘저 책 좀 줘봐.’이라고 말할 때에는 ‘저’가 가리키는 것이 청자가 특정할 있는 물리적 영역에 있습니다. 말하는 이는 ‘저’라는 말을 청자가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요. 이같은 지시의 역할이 인식의 영역에 적용된 것이 바로 정관사 ‘the’가 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자가 “the”를 붙여 말하는 명사는 청자의 인식 속에서도 특정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원리에 따르면 sun이나 moon 나아가 universe 등 천체를 나타내는 말은 언제 쓰이건 대화자 모두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해는 유일한 해이고 달은 유일한 달이며 우주는 유일한 우주이니 다른 걸 상상할 수 없죠. 처음 나오느냐 두 번째 나오느냐에 관계없이 대화자 모두가 알고 있다고, 다시 말해 화자 뿐 아니라 청자 또한 ‘아 그거’라고 특정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항상 the와 함께 쓰입니다.

한 가지 더할 것은 특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명사는 가산성이나 단복수성과 관련이 없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the를 붙여 특정할 수 있는 명사는 셀 수 있는 명사일 수도 (the apple), 셀 수 없는 명사일 수도 (the money) 있습니다. 또한 단수건 복수건 전혀 상관이 없기에 the apple이나 the apples 모두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a moon’이나 ‘a universe’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달 vs. 위성, 유일한 우주 vs. 여럿 중 하나의 우주

말씀드렸듯이 현재 지구에서 ‘달’이라고 하면 하나의 달을 떠올립니다. 토끼가 절구질을 하고 있는 그 달이죠. (여기에서 지구를 돌고 있다는 다른 달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달’이라면 “the moon”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지구에서 달을 가리킬 때 반드시 the를 붙여서 쓰는 것은 아닙니다. 달의 양태는 여럿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달의 여러 모양 중 하나인 ‘큰 보름달’은 ‘a great full moon’이라고 할 수 있죠. ‘a blue moon’이나 ‘a half moon’이라는 표현도 가능하구요. 여러 형태와 색깔을 가진 달 중에 하나를 가리킨다면 ‘a ~ moon’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a moon’이 가능한 경우가 또 있습니다. 지구인은 유일한 달을 이야기하므로 ‘the moon’으로 쓸 수밖에 없지만, 달이 여러 개인 행성이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목성에는 달이 79개가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라면 “The Earth has a moon while Jupiter has 79 moons.”라고 쓸 수 있습니다. “목성은 달이 79개이지만 지구는 달이 하나다.”라는 의미인데, 이 경우 ‘moon’은 평소 말하는 달이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위성(satellite)의 뜻이 됩니다. 특정될 수 없는 일반적 개체가 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우주는 보통 ‘the universe’이지만 ‘a universe’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중우주론을 주장하는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이 우주 외에 다른 우주들도 있지요. 이 경우 현재 우리가 지각하고 살아가는 우주는 여럿 중 하나의 우주 즉, ‘a universe’입니다. 다른 우주들을 포함해서 ‘universes’라는 말을 쓸 수 있고요. 따라서 복수의 우주를 가정하는 이론체계 안에서는 “multiple universes”라는 표현이 얼마든 가능한 것입니다.

정관사, 부정관사, 그리고 총체와 가능성으로서의 세계

이와 같은 논리는 세계를 나타내는 world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 예문을 보시죠.

a) The world is full of sorrow.
b) We want a better world.

위의 두 예문에서 ‘world’ 앞에 서로 다른 관사가 쓰였습니다. a)에는 정관사 the가, b)에는 부정관사 a가 쓰였죠. 왜 이런 차이가 오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세계’라고 말할 땐 ‘the world’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유일한, 그리고 특정한(specific)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b)에서 ‘world’는 가능성으로서의 세계입니다. 지금 눈앞의 세계는 하나일지라도 미래에 가능한 세계의 가능태는 수없이 많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a world’입니다. 그렇기에 ‘a better world’ 뿐 아니라 ‘a greater world’, ‘an ideal world’, ‘a miserable world’ 등의 표현도 가능하죠.

달은 하나이지만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세계는 하나의 총체이지만 가능성으로서의 세계는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유일하게 정해진 것(definite)처럼 보이는 것들도 결코 특정한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indefinite) 것입니다. 어떤 틀에서 개념화되느냐에 따라서 그 인식론적 지위(epistemological status)가 달라지고, 함께 쓰이는 관사도 바뀌는 것입니다.

관사, 인식론적 지위를 트래킹하는 시스템

이렇게 보면 관사는 말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명사의 인식론적 지위를 따라가는 일종의 트래킹 시스템(tracking system)입니다. 즉, 명사에 ‘꼬리표’를 달아 말하는 이가 지칭하는 바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관사를 쓰는 경우 화자는 청자가 자신이 말하는 명사를 특정(specify)하여 따라올(track)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고, 부정관사를 쓰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 개의 개체 중 하나라는 것만 인식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지요. (자세히 논의하지 않았지만 관사를 아예 쓰지 않는 무관사(zero article)의 경우도 나름의 기능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저의 예전 영어선생님이 신정보/구정보의 틀로 부정관사와 정관사 사용을 구분했던 기술방식보다 훨씬 정확하게 관사의 사용을 포착합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을 따르자면 제 중학교 때 선생님의 설명은 “simpler(실제보다 더욱 단순화한)”한 것입니다. 이런 설명은 임기응변은 될지 모르지만 문법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언어현상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학생들을 좌절시킬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듯 말입니다.

 

영어 관사와 화자의 의도: 아래 글에 이어 쓰려고 하다가 길어져서 쓰지 못한 이야기

관사의 쓰임을 신정보/구정보로 설명하는 방식은 또 하나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관사의 쓰임을 온전히 텍스트 안에서 설명하려고 든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제가 소설의 첫 문장을 “I hugged the tree.”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죠. 이 경우 전통적인 구정보/신정보 관점에서는 소설의 첫 문장이므로 “the tree”가 어색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문장은 전혀 어색하지 않지요.

사실 작가는 독자가 이 문장을 처음 읽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쓰는 책이니 모를 수가 없죠. 하지만 의도적으로 정관사를 쓴 것입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는 알 수 없지만, 독자들에게 ‘나무’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붙이지 않는다면 “the tree”가 무난할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나무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어내려 할 경우에도 “the tree”가 ‘a tree’보다 적절한 선택이겠죠. 이어서 “I smelled the soil and walked with the dogs. I watched the river a while, serene and weary.” 같은 문장을 제시한다면 이들 명사가 하나의 앙상블(ensemble)을 이루어 더 큰 호기심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가 묘사하는 이 곳이 대체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자아내는 것이죠.

따라 이런 경우 the tree 자체가 신정보냐 구정보냐의 문제가 아니라, 화자(작가)가 특정한 명사를 신정보로 개념화하느냐 구정보로 개념화하느냐의 문제가 더욱 중요합니다. 즉 화자는 정관사라는 도구를 통해 의도적으로 ‘알려진 것인양’ 포장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사실 독자들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개체들을 연달아 the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추후 설명될 것’이라는 언질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화자의 의도를 명확히 하고 수사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 처음 등장하는 명사에도 the를 얼마든지 붙일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The의 선택 여부는 단지 텍스트 내의 규칙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사용자의 의도와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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