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뽑힌 상호텍스트성

‘뿌리뽑힌 상호텍스트성(uprooted intertextuality)’

1. 글은 배후에는 언제나 맥락이 있다. 맥락은 관계성과 역사성을 모두 포함하며 권력의 플랫폼 위에서 작동한다. 예외는 없다.

2. 미디어의 특성상 단문과 카드뉴스, 적지 않은 소셜미디어 포스팅은 맥락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권력의 문제는 피해가기 일쑤다. 결국 맥락이 사라진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을 채운다.

3.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맥락을 아예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인간의 개념체계는 맥락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A라는 포스트의 주요 맥락은 B가 제공하고, B라는 텍스트의 맥락은 C와 D가 제공한다. 이렇게 텍스트는 서로서로의 맥락이 되어 서로를 강화한다. 삶으로 가는 길은 종종 희미하거나 험난하다.

4. 결국 삶이 맥락이 된 텍스트는 줄어들고 텍스트가 맥락이 된 텍스트가 증가한다. 인간의 얼굴과 몸, 관계가 맥락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공유된 글”이,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의 포스팅”이 맥락의 자리에 들어선다.

5. 이렇게 ‘뿌리뽑힌 상호텍스트성(uprooted intertextuality)으로 구성된 텍스트의 매트릭스가 향하는 길은 명확하다. 삶의 질서와 유리된 텍스트만의 질서가 구축되는 것. 그 안에서 새로운 권력과 관계가 자라나는 것. 빨간약과 파란약을 선택할 기회마저 봉쇄당하는 것.

5. 가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곤 하지만 여전히 그 공간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물론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이라고 이름붙인 대부분의 텍스트는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