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languaging, Composition, 그리고 영어교육

1. 내가 가장 즐기는 두 활동인 글쓰기와 음악 모두 composition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실 이 두 영역 뿐 아니라 미술 및 사진을 비롯한 예술 영역에서 composition이라는 말이 두루 쓰인다.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을 통해 보다 복잡한 구조체를 만드는 활동을 통틀어 composition이라고 부를 수 있다.

2. 단어건 음표건 컷이건 공간이건  요소들이 함께 배치되는 데서 패턴이 생겨나고 패턴이 반복되고 중첩, 변주되면서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런 면에서 추상적인 수준에서 글쓰기를 비롯한 예술창작 전반을 관통하는 단어가 composition 아닌가 싶다. (이 의미에 상응하는 우리말이 있을까? ‘구성’이라고 번역되긴 하지만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3. 일상에서 작문이라고 하면 대개 한국어 작문을 가리킨다. 영어로 쓸 경우는 영작문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용례들의 특징은 작문행위가 한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문서는 하나의 언어로 작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당연시하는 것이다.

4. 하지만 ‘구성composition’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글이 하나의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협소하기 짝이 없다. 당장 시내의 간판들과 광고들만 봐도 다양한 언어가 어울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요즘은 영어 외에도 다양한 언어들이 일상에 광범위하게 침투해 있다. 도시의 언어경관은 분명 여러 언어로 구성된다.

5. 인간을 ‘한국어를 쓰는 존재’, ‘영어를 쓰는 존재’ 등의 틀에 가두지 않고 ‘의미를 만드는 존재’로 바라본다면 여러 언어를 섞어 쓰는 시도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전혀 필요치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면 눈살이 찌푸려질 수 있겠으나, 특정 언어로 표현해 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구절에 대해서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의도적인 구성의 행위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6. 예를 들어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글에 ‘아랫목’과 ‘고구마’, 그리고 ‘할머니’를 한국어로 쓸 수 있다. 필요하다면 각주를 통해 이 세 단어의 의미를 밝히겠지만, 본문에서 이들 단어를 계속해서 고집할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7. 응용언어학 분야에서 다언어를 활용한 담화 구성 활동을 지칭하는 말로 translanguaging 이 부상하고 있다. 언어 사이를 넘나들며 발화나 작문을 구성하는 활동이라고 보면 된다. 10여 년 전부터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도 뿐 아니라 교육적 활용도 활발히 논의되는 중이다.

8. 한국 영어교육 상황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섞는 것은 금기다. 가급적 ‘영어로만 사고’해야 하고, 영어로만 말하고 써야 한다. 그래야 영어가 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미를 만드는 존재는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섞고자 하는 욕망을 가질 수 있으며 수사적 효과 또한 노릴 수 있다. 조금 더 급진적인 시도를 한다면 기계번역의 힘을 빌어 수십개 언어로 시를 쓰거나 ‘팝아트적’ 글쓰기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9. 그런 면에서 우리말을 벼려 더욱 견실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혼종성(hybridity)을 실험하려는 시도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10. 생각해 보면 영어야 말로 엄청난 짬뽕언어 아닌가!

#삶을위한리터러시 #translangua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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