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는 법

지난 주 기말고사 일자를 공지했다. 늘 그렇듯 강의계획서에 나와 있는 학기 마지막 수업일이다. 수업이 끝나고 한 학생이 다가왔다. 오래 전부터 계획한 여행을 가야 하는데 시험 날짜를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되려 일정을 바꿀 수 없느냐고 물었고, 그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사뭇 단호한 것이 당장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날짜를 물어봐 줄 수 없겠느냐는 너무나 간곡한 요청에 결국 다음 시간에 학생들에게 날짜 변경 가능여부를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날짜를 옮기는 데 모두가 찬성한다면 일자를 변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오늘 수업 시간. 여행을 가려는 학생이 리마인드를 해 주었다. 학급 전체에 물었다. “시험 날짜 당겨도 될까요? 저는 한 주 일찍 봐도 상관이 없습니다.” 교실을 둘러보았다. 그냥 예정된 날 보자는 얼굴들이었다.

다시 “그냥 그날 볼까요?”라고 물었다. 여기 저기에서 그러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럼 예정된 대로 봐야겠네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났다. 짐을 챙기는데 여행을 가려는 학생이 앞으로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길래 일정대로 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학생들에게 물어본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래서 물어봤잖아요.”
“그래도 물어보신 게 아니잖아요.”
“???”
“거수해서 다수결 투표하지 않으셨잖아요.”
“아… 제가 교실을 다 둘러봤어요. 그대로 보자는 학생도 꽤 있었고요. 그러면 그대로 봐야죠.”
“그래도 다수결 투표를…”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가버린 학생. 나는 마지못해 ‘미안하게 됐다’는 말을 했다. 여행을 취소하거나 미뤄야 하는 상황을 맞은 그의 얼굴엔 분한 표정이 가득했다.

사실 잘 이해되지 않았다. 왜 ‘다수결 투표’가 답이라고 생각하는지. 몇 명이라도 기존의 계획을 선호한다면 그대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다수결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저 인식은 어디에서 온 건가?

황당하게 미움받는 거, 참 별로다. 그렇다고 피할 방법도 없다. 그래도 하나 배운 게 있으니 이제 시험 날짜 변경 요청을 받으면 단칼에 거절할 것이라는 것. 간곡함에는 단호함으로. 기말은 마지막 날에.

– 수년 전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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