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맺기’ 단상

1. 말과 생각 사이에 어떠한 연관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부르든 현상의 본질은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2. 페이스북의 ‘친구맺기’는 꽤나 요상한 명명이다. 친구가 아닌데 ‘친구’가 되고 뭔가를 맺은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맺기’가 된다. 언어의 외연이 확대되는 일이야 자연의 법칙에 가깝지만,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해서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3. 친구맺기의 형식은 단순하다. 친구맺기를 신청하는 사람은 요청(request)을 한다. 이에 대해 요청을 받은 이는 수락(accept)한다. 요청과 수락의 짝은 일종의 의례(ritual)로 기능한다.

4. 종종 이 의례의 이름이 ‘친구맺기’가 아니라 ‘어쩌다연결’이 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쩌다연결’이 의미하는 것은 관계의 지속이 아니라 필연적 헤어짐이다. 계정은 언제든 비활될 수 있고 탈퇴 또한 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헤어짐’이라는 말도 과한 것 아닌가 싶다.

5. 소셜미디어에서 친구를 맺는 일은 누군가를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니라 담벼락을 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뜻에 가깝다. 관계를 상정한다기 보다는 구독을 허락하는 행위인 것이다. 구독을 허락하는 것과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건 전혀 다른 층위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행위를 ‘friend request’를 ‘accept’한다고 표현한다.

6. 쉽게 툭 끊어지는 관계가 있다고 하지만 애당초 없었던 관계에 대해 환상을 부여한 것에 가깝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만 옷깃을 스치긴 꽤나 힘든 일 아닌가.

7.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존재하지 않던 것에 대한 집착을 강화한다. 여기에는 상대에 대한 기대 뿐 아니라 개인 정체성의 일부도 포함된다. 내가 아닌 나에게 빠져드는 것이다. 친구의 수가 많아지고 반응의 수가 증가하면 자신에 대한 ‘환상’도 팽창한다.

8. 의미있게 유지할 수 있는 관계의 수를 말할 때 종종 언급되는 ‘던바의 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수백 수천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게다가 페이스북은 자신이 생각하는 ‘합리적’ 알고리즘에 따라 담벼락을 재구성한다. 이 논리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의 선택 또한 상당부분 환상이다.

9. ‘너랑 친구 안한다(unfriend)’는 애초에 많은 이들을 ‘친구’로 받은 이들에게 예비된 업보일지도 모른다. 필요이상의 물질적 부를 누리는 이들에게 낭비가 필연이듯 말이다.

10. 권력(power)의 그림자를 배제할 수 있는 관계란 없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눈높이를 맞추고 경청하기 위해 친구맺기를 ‘요청’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줄 사람들을 찾기 위해 친구맺기를 ‘강요’한다. 전자의 친구가 후자의 친구와 같을 리 없다.

11. 친구였던 적 없는 친구를 ‘잃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도 많은 이들에게 그다지 좋은 친구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별로 없다.

12. 그럼에도 ‘어쩌다연결’에서 ‘친구맺기’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은 참으로 소중하다. 그런 기적에 맛들여 이 공간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너무 교훈적인 결론인가? 아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결론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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