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사다리? – 어떤 메타포의 위험성에 대하여

1. 어떠한 메타포도 현상을 완벽하게 포착하진 못한다. 언어는 세계를 단지 기호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해석하고 개입한다.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지층이 얽히고 섥힌 현상을 몇 마디 말이 간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철저히 중립적인 기표란 없는 것이다.

2. 그렇기에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은 특정 메타포가 작동하는 방식과 그 효과이다. 언어학적으로 말하면 메타포가 발생하는 맥락(context)과 화용적 힘(pragmatic force)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특정 메타포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그 메타포를 사용했을 때 어떤 점이 부각되고 어떤 점이 탈각되는가? 그 메타포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될 때 (naturalized), 어떤 관점이 득세하고 어떤 전제가 뿌리박는가?

3. 오늘만 타임라인에서 ‘교육=사다리’ 메타포를 둘러싼 글 셋을 보았다. 워낙 굳어진 메타포로 널리 쓰이고 있으니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최근의 자사고 정책 논란과 일부 학교의 지정취소와 관련하여 나올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4. 교육이 계층간 이동의 사다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찬반여부를 떠나 ‘사다리’가 갖고 있는 특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5. 우선 사다리는 필요에 따라 갖다 쓸 수 있는 도구로 교육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상승욕구’를 갖고 있다고 상정한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가고 싶어하며 이것은 교육받는 모든 주체에게 적용된다. 과연 그러한가? 그래야만 하는가? 나는 이 질문이 교육에 있어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6. 다음으로 사다리라는 수단은 비인격적이다. 사다리는 그 자체로 인간의 특성을 갖고 있지 않은 물리적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교육이 사회이동의 사다리로 작동하는가’의 질문은 교육을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 변형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상정하고 있다.

7. 하지만 현실의 교육은 물리적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2만여 개의 초중고 학교, 600만 여 명의 학생의 삶의 터전이며 삶 자체다. 대학을 더하면 이 생태계의 규모는 800만 구성원을 훌쩍 넘어선다. 그 자체가 거대한 유기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8. 교육이 사회계층 사이의 이동성을 촉진하는 사다리인가에 대한 논의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것은 ‘학교를 바꾼다고 사회가 바뀌는가’라는 말이다. 이 질문은 대개 학교를 어떻게 바꾸더라도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9.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기엔 커다란 허점이 있다. 생각해 보자. 공교육이 바뀌면 수백만 학생과 학부모들의 삶, 사교육이 바뀌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교육이 바뀌어 봤자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은 교육을 그저 무색무취의 물리적 도구로 파악하는 사다리 메타포와 동전의 앞뒷면처럼 얽혀 있다.

10. 교육의 변화를 생각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교육이 바뀜으로 사회가 바뀌는가 하는 질문이 아니다. 학교제도를 조금 손본다고 해서 비정규직의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거나 정치적 후진성이 일거에 사라지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 바뀌어서 학생과 교사, 나아가 지역사회와 학부모의 삶이 바뀌는가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거대 정치경제 구조의 변화에 종속되는 사소한 변화가 아니라 일상의 변화이고 세계관의 변화이다. 이 변화는 그 자체로 충분한 정치성을 지닌다.

11. 이러한 면에서 ‘교육은 사다리’라는 메타포는 위험하다. 이 메타포는 교육을 무색무취한 물리적 도구로 바라보고, 교육이라는 제도의 복잡다단한 측면들을 거세하며, 무엇보다 교육 자체가 사람들의 삶이고 사회라는 점을 망각한다.

12. 교육은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분명 갖는다. 하지만 그 지위가 삶으로서의 교육을 압도할 때 우리는 ‘교육은 사다리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가’라는 앙상하기 짝이 없는 메타포에 포섭당하게 된다. ‘교육은 사다리인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가 프레임이 되어 찬반에 관계없이 수단으로서의 교육이라는 전제를 강화한다. 이 자체가 교육을 배반하는 일이다.

13. 따라서 ‘교육은 사다리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 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왜 교육은 사다리라는 메타포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가?’, 나아가 ‘어떤 힘들이 교육을 사다리라고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는가?’가 좀더 근본적인 논의를 가능케 할 것이다. 좋은 사다리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보다 사다리가 필요없는 생태계를 지어가려는 노력이 더욱 정치적이고 깊이 교육적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메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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