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와 인식론(Text and Epistemology) – William Frawley의 논의를 기반으로 (1)

문자의 도입과 인쇄술의 발달이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지식의 생산과 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그리고 학문과 예술의 발달을 어떻게 추동했는지 등의 여러 질문에 대해 다룬 대표적인 저작을 꼽으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월터 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Literacy and Orality> 와 마셜 맥루한의 <구텐베르크 은하계 The Gutenberg Galaxy> 등을 꼽을 것이다. 이 외에도 인쇄술의 영향을 깊이 다룬 Elizabeth Eisenstein의 <Printing press as an agent of change>나 Michael Cole & Sylvia Scribner 의 <Psychology of Literacy> 등도 꽤 흥미롭다. (사실 Eisenstein 책은 너무 두꺼워서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목차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인쇄술 발달이 우리 문화와 사 전반에 끼친 영향에 대해 큰 흐름을 살필 수 있다.)

오늘은 저 위의 ‘유명한’ 책들 만큼 회자되지는 않지만, 필자가 흥미롭게 읽은 William Frawley의 <텍스트와 인식론(Text and Epistemology)>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텍스트와 인식론이라니 제목부터 거창한 느낌인데, 사실 내용도 꽤나 거창하다고 할 수 있다. 텍스트의 변화가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그에 대해 아는 방식을 철저히 바꾸어 놓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Frawley는 월터 옹의 구술 문화 oral culture 와 문자 문화 literate culture 의 구분을 확장시켜 언어/문자의 역사적 ‘발달’을 세 단계로 나눈다.

첫 번째는 텍스트가 전혀 없는 단계, 즉 비텍스트성을 특징으로 하는 구술 문화 oral culture 이다. (아이콘과 같은 그림을 그려 소통하는 방식은 본격적 의미의 쓰기에서 제외된다.) 두 번째는 텍스트가 실제 경험과의 연관 속에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도록 돕거나 구성하는 리터러시 literacy 단계다. 마지막으로는 사람들이 지식을 획득하거나 (재)구성하기 위해 (직접적 경험보다는) 다른 텍스트에 의존하는 하이퍼리터러시 hyperliteracy 단계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의 이행이 그 전 단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특성을 어느 정도 간직한 채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즉, 리터러시 단계는 구술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구술적 요소를 품으면서 문자문화의 특성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 또한 단순한 산술적 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이야기 방식을 생각할 때, 순수한 구술문화에서의 내러티브와 문자문화가 삶에 깊이 침투한 사회에서의 내러티브는 질적으로 다른 특징들을 보이기 때문이다.

언급한 세 단계를 특징 짓는 키워드는 각각 구술성 orality – 리터러시 literacy – 하이퍼 리터러시 hyperliteracy 이다. 이것을 텍스트성의 관점에서 다시 이야기하면 (1) non-textuality (텍스트가 없어 텍스트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 – (2) textuality 텍스트성 – (3) intertextuality 상호텍스트성이라 할 수 있다. Frawley는 각 단계의 특징을 일곱 가지로 제시한다. 아래는 저자의 주장을 간추리고 약간의 살을 더해 본 것이다.

(1) 항상성 – 성장 – 복수성(Homeostasis – Growth – Plurality)

저자는 먼저 텍스트성이 지식의 양적/질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구술문화는 지식의 항상성 homeostasis 을 특징으로 한다. 이 용어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쉽다. 마치 구술문화에서 지식이 물에 고여 있어 다른 곳으로 흐르지 않고 정적인 상태로 굳어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뜻은 아니다. 일례로 저자는 구술문화에서도 새로운 지식이 생성됨을 인정하지만, 새로운 지식의 탄생이 다른 지식의 ‘죽음’을 낳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예로서 구술문화에서의 신화가 종종 기존에 ‘오래된 신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신들’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든다. 따라서 구술문화에서는 “지속적으로 쌓이고 저장되는 어떤 것으로서의 지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층층이 쌓인 텍스트들이 방대한 인식 시스템을 구성하는 일은 힘들었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구술문화에 비해 텍스트성 textuality 은 (지식의) 성장 growth 을 가져온다는 특징을 지닌다. 사실 경험을 텍스트화 한다는 것 자체가 지식의 확대를 함의한다. 일례로 저자는 서양에서 많은 경우 개인이 해당 언어의 어휘 중 얼마나 많은 단어들을 알고 있는지를 통해 지능 intelligence 을 측정함을 지적한다. (저자에 의하면 유명 작가 중 세익스피어가 가장 많은 활용 어휘를 자랑하고 있다고 하고, 밀튼 Milton 이 그 뒤를 잇는다고 하는데 얼마나 과학적인 지적인지는 모르겠다.) 단어의 습득을 지능과 연결시키는 것은 텍스트의 축적을 진보와 연결시키는 징후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저자는 텍스트가 쌓이는 물적 공간의 존재와 심리적/정신적 문자문화의 발달의 연관성을 보여주기 위해 18세기 유럽에서의 공립 도서관의 발흥과 문자문화의 융성이 같이 진행되었음에 주목한다. 여기에서 텍스트의 성장은 지식의 성장을 가능케하는 동력이 되고, 이는 다시 책과 도서관이라는 물성을 지닌 환경으로 텍스트의 성장에 되먹임된다.

이어서 저자는 상호텍스트성이 중심 개념으로 자리잡는 하이퍼리터러시에 대해 살핀다. 여기에서는 푸코가 말하는 “주석 commentary 으로서의 지식”이라는 개념이 핵심이다. 어떤 분야의 지식이 텍스트로 축적되어 있을 경우 그 분야의 ‘새로운’ 지식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텍스트들의 일부를 뒤집는 작업, 혹은 (진중권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인) ‘몽타주적 글쓰기’와 같이 기존의 텍스트들의 부분 부분을 모아서 새로운 텍스쳐를 지닌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경우 새로운 지식은 특정한 담론 공간 discursive space 내에 위치하게 된다. 이것이 위에 말한 텍스트성과 다른 점은 하나의 권위적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위계적이며 잘 정렬된 텍스트들이 아니라, 여러 개의 텍스트들이 복수성 plurality 을 지니고 다소 “평평한” 담론의 공간에 얽히고 섥힌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점이다. (계속)

참고도서: <Text and Epistemology> by William Frawley

https://www.bookdepository.com/Text-Epistemology-William-Frawley/978089391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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