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와 인식론(Text and Epistemology) – William Frawley의 논의를 기반으로 (2) 

2) Predoxa-Doxa-Paradoxa

두 번째로는 텍스트성이 지식 체계에 있어서의 교전 doctrine/doxa 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를 보자. 비텍스트성 non-textuality 을 근간으로 하는 구술문화에서는 지식 체계에서의 교전 혹은 정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지식에서 교전을 갖는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텍스트의 존재를 상정하기 때문인데, 구술 문화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규모 커뮤니티 단위에서 권위를 가진 몇몇 사람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지식에 기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이 가지는 권위와 텍스트로 존재하는 기준이나 원칙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러한 텍스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전과 법전일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개인의 의견/행동/말의 일관성은 텍스트적 일관성과는 그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시대에 따라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텍스트 자체는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텍스트성이 중요해지는 문화에서는 텍스트간의 관계, 그 위계의 중요성이 커진다. 다시 말해, 텍스트성은 아이디어 상호간의 위계질서를 필요로 하며, 지식은 많은 경험들의 수평적 연결이 아니라,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묶는 논리 logic 에 기반한다. 이것은 여러 지식 체계를 관통하는 교전 doxa 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지식생산의 성공 여부는 이러한 논리 logic 에 근거하여 기존의 지식을 얼마나 잘 조직하느냐에 달려 있다.

위의 분석과 관련하여 Frawley는 월터 옹의 고대 텍스트 분석의 예를 제시한다, 옹에 의하면 구술문화는 정보의 전달을 등위 접속사에 의존한다. (옹은 이를 ‘등위접속사의 승리’라고 부른다.) 즉, 구술문화에서는 정보의 전달에 있어서 그리고/그러나/그렇지만/그런데 등의 역할이 매우 크다. 하지만 텍스트가 축적된 문자문화에 들어서면 종속접속사 (영어에서 while / before / until 등) 등이 더욱 자주 나타나게 된다. “텍스트에 기대어 이야기하기”가 매우 중요한 소통의 모드가 되면서 이런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술이 일련의 사건을 등위접속사 위주로 전개한다면 텍스트 특히 논리적이고 설명적인 텍스트는 문장간의 관계를 위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논리적 힘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호텍스트적 하이퍼리터러시의 시대에는 해석의 기준이 되는 ‘하나의 원칙’이 사라진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궁극의 레퍼런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특정 지식은 더이상 교전 doxa 이 될 수 없으며, 여러 텍스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거대담론은 사라지고 특정 컨텍스트 속에서 작동하는 언어의 기능/권력만이 존재한다. 텍스트의 의미는 하나가 아니라 그것을 읽는 개개인의 숫자, 아니 그 개개인의 상황과 기분과 관점의 수만큼이 많아진다. 이른바 ‘포스트구조주의’가 상정하는 담론의 세계가 바로 이런 모습일 수 있을 것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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