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성, 비시간성, 역사, 그리고 메타-역사

텍스트와 인식론(Text and Epistemology) – William Frawley의 논의를 기반으로 (4) – 텍스트성, 비시간성, 역사, 그리고 메타-역사(textuality, atemporality, history, and meta-history)

텍스트 없이 역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물론 텍스트와 관계없이 역사는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근대 이후의 세계에서 인류가 개념화한 “기술된 역사”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Frawley는 Goody의 견해를 빌려 텍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던 구술문화의 역사를 비시간성 atemporality 이라는 키워드로 특징짓는다. 이유는 자명하다. 텍스트가 없던 시절에는 개개인이 과거를 물화 reify 할 수 있는 도구가 없었던 것이다. 텍스트는 과거를 대상 object 으로 만들지만 구술문화에서는 언제나 과거에 대한 감각이 현재화된다. 어떤 과거이든 과거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누군가에 입에 의해 발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구술문화에서의 시간과 역사는 현재 우리가 인지하고 느끼는 시간과 역사와 매우 다른 차원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가 누군가의 구술을 통해 늘/계속해서 현재에 침투해 들어오는 상황(구술문화)과, 기록으로 물화되어 켜켜이 쌓여 있는 상황(문자문화)에서 인간의 과거에 대한 인식/인지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위에서 언급한 구술문화의 과거-현재의 비분절성을 애니미즘 및 토템신앙으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애니미즘은 만물에 영혼이 침투해 있다는 믿음인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그것을 믿는 주체와 대상들 사이에 거리가 없어야 한다. 다시 말해 애니미즘은 개인과 대상화된 물건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하에서 가능한 것이다. 토템 신앙도 같은 맥락에서 동물과 인간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근본적으로는 하나라는 믿음에 기초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구술문화에서는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이 발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이 유비를 이용하여 에머슨이 플라토닉한 현존을 강조하여 모든 사물들에 자연 Nature 을 불어넣으려 했던 시도가 자기 자신과 텍스트 사이의 거리를 없애고, 사물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제거하려는 시도라는 해석을 내린다.

과거와 현재의 거리가 없는 구술문화는 텍스트의 등장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텍스트의 축적에 따라 과거가 대상화된다. 텍스트의 광범위한 사용과 더불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가 등장한다. 과거는 텍스트의 모음과 이음이 됨과 동시에, 구술문화에서 존재했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와 화자 그리고 현재라는 맥락 사이의 끈끈한 연결 고리가 사라진다. 필자는 이러한 텍스트 문화의 특성으로 구술문화에서는 없었던 복원성 recoverability 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구술문화 자체는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에 어떤 대상을 복원할 필요도 없었고 복원이 가능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텍스트로 많은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면서 ‘텍스트적 역사’가 생겨나고, 이것은 복원되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정밀한 고증의 가능성이 탄생하고 이를 바람직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이 복원성의 개념은 푸코와 바르트가 이야기한 연루 filiation 개념과 유사하다.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 문자 문화에서 개인들은 그들의 과거를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는 텍스트의 세계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어한다. 왜 그런가? 텍스트가 등장하면서 과거가 대상화되는 반면 “얇아진” 현재는 늘 휘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들은 존재의 안정을 찾기 위해 텍스트에 의존하게 된다. 현재는 개인에게 안식처를 줄만큼 견실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Frawley의 논의를 받아들인다면 다양한 논의에서 발견되는 ‘휘발하는 현재’라는 개념은 근대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재를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매우 짧은 순간과 연관지어 개념화하는 경향은 텍스트를 매개로 한 지식사회의 등장과 과학기술적 엄밀성, 수치와 통계 중심의 세계 등의 영향 하에서 더욱 강해졌으리라 추측된다.

상호텍스트성은 텍스트성에 대한 논의가 보여준 역사와 복원성 그리고 연루라는 개념들을 넘어선다. 거의 모든 정보가 텍스트로 존재할 때 ‘육성으로 듣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과 얼굴 표정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역사는 사라지고, “역사적 쓰기”만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역사가 사라진 자리에 “메타-역사”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지금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텍스트들을 기반으로 역사를 기술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역사적 사건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교감을 통해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해 쓴 텍스트를 가지고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거의 모든 역사 (극히 일부 현대사를 제외하고) 는 거의 순수한 텍스트의 세계에서 추출/재조합/재해석 된 ‘메타-역사’의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메타-역사’의 세계에서는 복원성이 사라진다. 1차 사료가 없이 텍스트들의 세계로부터 구성된 역사는 재연 혹은 재현 불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복원성이라는 개념은 적절성을 잃는다. 역사는 텍스트의 재구성이며, 메타 수준에서 기술된 역사는 그 성격상 실제 발생했떤 사건들과 멀디 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Frawley #텍스트성과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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