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를 돌아보며 (2019)

“We suffer together. Therefore WE are.(우린 함께 고통받지요. 그래서 ‘우리’로 존재하는 거라고요)”

설치형 게시판에 글을 쌓아놓기 시작한 지 20여 년. 그간 만들었다 없앤 개인 웹사이트만도 대여섯 개가 되었다. ‘창작 지식노동자’의 정체성을 갖고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10년으로 기억한다. 우리 동네에서는 ‘comprehensive exam’이라고 불렸던 논문자격 종합시험을 마치고 고민의 흔적을 남기고자 시작한 글쓰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스스로를 느린 독자/필자라고 생각한다. 우선 읽기의 속도가 천문학적으로(?) 느리다. 성격이 고약해서인지 전공과 관련된 책을 대충 읽어내질 못한다. 게다가 읽기와 쓰기 모두에서 한국어와 영어 모두 어정쩡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렇다고 꼼꼼한 성격도 못된다. 유머마저 진지해서였던지 ‘절대반지’가 아닌 ‘절대진지’로 종종 불렸다. 글이 별 재미가 없다. 직업과 맞지 않는 특성을 두루두루 갖춘 것도 같다.

글쓰는 일이 업의 절반쯤 되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다.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올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는 분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나의 글은 다소 즉흥적이고 꽤나 무거운데다가 대개 뭉툭하다. 굳이 합리화를 하자면 나의 글은 전위에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다기 보다는 조금 뒤쳐져 가면서 옆과 뒤를 살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인 듯하다. ‘커팅 에지(cutting edge)’가 베어낸 나무의 나이테를 세는 일처럼 말이다. 이 또한 나의 정신승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2012년 학위과정을 마치면서 아래 ‘글쓰기 훈련에서 배운 것’이라는 쪽글을 썼다. 타지에서의 삶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어디든 타지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이방인의 감각을 선사해 주었다는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내 언어가 아닌 외국어로 논문을 쓰면서 한계에 자주 부딪쳤지만 변방과 경계의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완벽에 가까운 글에서 만족을 느끼기 보다는 늘 모자란 글에서 슬픔어린 불만을 키웠다. 그 불만이 발효되면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허풍없는 태도가 우러났다. 그래서인지 종종 글쓰기를 가르치지만 ‘저처럼 쓰세요’라고 말하기 보다는 ‘We suffer together. Therefore WE are.(우린 함께 고통받지요. 그래서 ‘우리’로 존재하는 거라고요)’라고 말한다.

여전히 글은 힘들다. 하지만 그 여정에서 만나는 놀라운 사람들이 있어 기쁘다. 7년 전 글을 읽으면서 글쓰기의 지난함과 설렘을 되새긴다. 내 논문의 감사인사는 다음 문장으로 끝난다.

Yes, I typed a dissertation. But we wrote it. (네 맞습니다. 논문을 타이핑한 건 접니다. 하지만 논문을 쓴 건 우리 모두 함께였습니다.)

<글쓰기 훈련에서 배운 것>

돌아보면 힘들었던 건 타지생활이 아니었다. 먹을 게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나날이었고, 밤낮도 주말도 없는 직장생활의 여유없음을 핑계로 방치했던 동네라는 공간을 다시 발견한 시기였고, 자주 홀로 걸으며 길과 하늘을 사진으로, 마음으로 담을 수 있었던 벅찬 시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사과정 내내 무의식과 의식을 넘나들며 나를 괴롭혔던 건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었다. 제2언어 리터러시에 대한 공부를 하고 쓰기에 대한 강의를 하고 학술논문 쓰기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면서도 자신의 글쓰기에 늘 신경이 쓰였다. 내가 가진 생각을 좀더 깊은 울림으로, 명확하고 생생하게, 아름답도록 아리게 전달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지만 여전히 영어는 “그들의 언어”로 남아 있(었)다.

논문을 쓰면서 배운 건 심오한 지식의 세계라기 보다는 글쓰는 사람으로 살아내야 할 일상, 글쓰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가다듬는 방법, 생각을 머금은 긴 산책으로 글길을 내는 일이었다.

조금 늦었지만 가파른 이론의 산을 오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있어보이는 암벽을 고르는 게 아니라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일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사고와 글쓰기의 통합”을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쓰는 건 사는 것과 분리할 수 없다는 ‘구태의연한’ 표현에 담긴 뜻을,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하루 하루 조금씩 엮어갈 수밖에 없다는 조언의 참뜻을 이제야 알 거 같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쓰기라는 베틀을 통해 생각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 방법을 구체화시킬 수 있었고, 엉킬 대로 엉킨 생각의 타래를 글줄로 뽑아내는 희열을 사모하게 되었다. 잘 다듬어진 글결이 보여주는 생각의 나이테에 감탄하게 되었고, 생각의 여정에서 남겨진 쪽글의 순진함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을 함께 써가는 사람들을 만나 아픔을 나눌 수 있었다. 글쓰기와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지만 계속 “차이는” 사람들, 그 쓰라림에 의연하지 못한 이들. 그래서 쓰기와 애증의 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는 나같은, 가련한, 아름다운, 별것 없지만 또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 기쁘고 또 슬펐던 나날이었다. (20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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