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와 부족주의

현재 ‘문해력’이 소환되는 상황은 이 용어가 일종의 부족주의(tribalism)에 복무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나의 생각과 맞아 떨어지는 글을 읽고쓰는 이는 문해력을 갖추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문해력이 떨어지고’, ‘난독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리터러시의 ‘위기’는 읽기쓰기 능력의 위기가 아니라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위기일지 모른다.

리터러시는 단지 ‘내가 텍스트를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텍스트를 둘러싼 나와 너의 관계’이다. 많은 학자들이 리터러시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리터러시 실천/관행(literacy practice)’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는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리터러시 논의에서 가장 간과되고 있는 것은 바로 특정한 상황 하에서 구성되는 관계성에 대한 논의 아닐까 싶다.

덧글: 네네. 부족주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텍스트는 새로움과 이해로 나아가기 보다는 자신들의 ‘정당성’과 결속력을 강화하죠. 이런 텍스트를 ‘높은 가치를 가진’ ‘좋은’ 텍스트로 평가하면서 부족주의는 강화되고 상호소통을 위한 문해는 힘을 잃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기복제적 텍스트 생산이 상찬받는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