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 속에서 성장하기

“Thinking is difficult, that’s why most people judge” (생각은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판단을 한다.)

칼 융이 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 그가 한 말은 조금 달랐다고 한다. (실제로 한 말은 ‘Thinking is difficult. Therefore, let the herd pronounce judgement.’라고.) 여기에서는 인용구의 정확성 여부를 따지려는 건 아니고 위의 말 자체에 대한 생각을 남겨두려 한다.

얼마 전 “리터러시 교육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라는 글을 썼다. 여기에서 본 논의에 핵심이 되는 구절만 다시 한번 반복해 본다.

“여기서 사회적 소통의 인프라로서의 리터러시 교육이 어려운 진짜 이유가 드러난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나와 다른 심성모델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생각이 거의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로버트 퍼트넘이 <우리 아이들>에서 지적했듯 사회적 섞임(social mixing)이 사라진 시대에 사회는 점점 양분화되고 또 하위 집단 사이의 단절은 강화된다.”

계층적, 이념적 단절, 세대간의 갈등이 현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류사에서 이런 종류의 단절은 언제나 있어왔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가 고도화되고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시대에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단절이 가능하게 되었다. 바로 “내가 원하는 것들만 볼 수 있는” 권한이 각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원하는 컨텍스트만을 골라 자신의 세계를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친구가 자신의 ‘소셜 미디어 실험’의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다. 그에게는 본 계정이 있었는데, 자신이 업무상 알게 된 지인의 페이스북 인연을 따라 부계정을 운영해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두 세계는 접점이 없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철저히 단절된 두 세계를 보며 새삼 놀랐다고 했다.

이렇게 분리된 두 세계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서로 다른 뉴스를 공유하고, 때로 정반대의 논조로 글을 쓴다. ‘저쪽 사람들’을 비웃는 포스트에 좋아요가 쇄도한다. 자신이 가진 견해의 정당성은 논리와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기 보다는 ‘좋아요’ 숫자에 의해 ‘증명’된다.

물론 세상 사람들을 단 두 개의 세계에 반듯하게 구분해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파나 계층을 불문하고 널리 사람을 사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오래 생각하고, 증거를 모으고, 더 깊이 파고들고 나서야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있고, 그들의 사려깊음에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적지 않은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상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데 급급하다. 텍스트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전쟁을 위한 무기가 된다. “텍스트는 어떻게 타자의 삶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는가?”라는 질문에 앞서 “이 텍스트를 어떻게 활용하면 내 싸움에 유리한가?”라는 질문이 공론장을 지배한다.

함께 작업하는 선생님의 언어를 빌리자면 많은 경우 자신의 텍스트는 방어(defend)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 말을 확장하면 타인의 텍스트는 공격(attack)의 대상이 된다. Defense/attack이 공론장의 텍스트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활동이 되어버린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텍스트는 해석(interpret)과 이해(understand)의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타인의 삶으로 나아가게 되며 이는 다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이것을 무너뜨릴 방법은 무엇인가?”라고 묻기 전에 “여기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정보/지식/지혜는 무엇인가?”나 “이 글은 나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해일이 몰려오는데 한가하게 조개 줍는 소리나 하고 있느냐’고 질책하실 분들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가진 가장 큰 허점은 우리 삶이 언제나 해일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해일을 핑계로 일상을 내던지면 우리는 계속 생각하지 않고 판단만 해대게 될 것이다. 텍스트는 자아와 피아, 우리편과 적을 가르는 도구로 남을 것이다. ‘판단의 전쟁’은 점점 속도를 높여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삼켜버릴 것이다.

계속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해일 속에서도 우리는 성장해야 한다.

#삶을위한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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