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스러운 짝의 망각력

꽤 큰 팀의 팀장으로 오래 일한 짝은 신입사원 특히 자기가 맡고 있는 팀원 선발과정에 직간접으로 참여하곤 했다. 서류 검토에서 인터뷰어 역할까지 일할 사람을 뽑는 데 직접 관여해온 것이다.

재작년이었나, 학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무심코 짝에게 “그래서 지난 번에 뽑은 사람은 학교랑 전공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모른다”였다. 나는 대뜸 “자기가 뽑았잖아요. 몇달 되지도 않았는데.”라고 받았고, 짝은 다시 태연스럽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짝은 자신이 뽑은 사람들의 출신학교와 전공을 거의 다 모른다고 했다. 면접 볼 때 잠깐 살펴보는 것 이외에 다시 볼 일도 없고 업무에도 중요하지 않은데 그런 것들을 왜 기억하고 있느냐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런 정보를 머리속에 담아두는 걸 당연시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학벌사회의 위계구조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나의 뇌 하나도 잘 통제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한 것 자체부터 글러먹었다는 걸 깨달았다. 기억되어서는 안되는 것을 알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구조는 강력하다. 결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우리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 또한 구조의 마음대로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서는 안된다. 어렵지만 이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조금이나마, 아주 미약하게나마 더욱 자유로울 수 있다. 때로는 망각이 그러한 자유로 가는 길이다.

사람들을 범주로 묶지 않고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하지만 갈수록 깨닫는 것은 누군가를 범주에 묶을 때 자신 또한 그 범주에 갇혀버린다는 사실이다. 두 인간이 아니라 특정 집합의 원소로 만날 때 이 세계는 더욱 파편화, 위계화된다. 뜬금없지만 어쩌면 사랑은 모든 범주를 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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