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용언어학, 어디로 가야 할까

1. 철학이나 정치경제 세미나들이 많이 보인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물 중심의 강독이 두드러진다.

2. 가끔 이런 세미나의 ‘아우라’에 압도당하곤 한다. 철학사를 섭렵하고, 푸코와 들뢰즈를 읽고, 아감벤과 바디우를 읽어내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런 세미나에 가면 분명 나의 부족함만 확인하고 돌아올 것 같은 기분이다.

3. 이런 생각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요즘은 나와 동료들의 학술작업에 대한 성찰에 무게를 두게 된다. 왜 응용언어학자들은 이런 세미나를 기획하고 실행해오지 못했던가? 왜 스스로를 ‘교수법 전문가’로만 자리매김했을까? 왜 이론적 깊이와 풍성함을 그토록 쉽게 포기(당)해 온걸까?

4. 예를 들어 보자. Stephen Krashen 비판적으로 돌아보기, James Lantolf 깊이 읽기, New London Group과 Douglas Fir Group의 논의로 본 한국의 언어교육, Claire Kramsch 저작 톺아보기, Merill Swain의 여정 따라가기, Dell Hymes의 저작으로 보는 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 Bonny Norton의 관점에서 본 정체성 담론, Social Turn과 Emotional Turn으로 본 응용언어학 논쟁사, Top papers in the history of applied linguistics 등의 세미나를 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5. 이런 아이디어들이 빛을 보지 못한 건 크게 세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첫째, 한국의 대학 체제에서 응용언어학 전공자들은 (영어, 독어, 불어 등의) 외국어교육과에서 강의를 맡게 된다. 사범대학에 속해 있는 이들 과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교사양성이다. 따라서 교과과정에서 위와 같은 식의 강의를 개설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둘째, 전공자들의 탈숙련화다. 개별 외국어교육이나 교사양성을 기본으로 하는 교과과정에 투입된 전공자들은 얕고 넓은 지식을 소화하여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하게 된다. 이에 따라서 박사과정 동안 연구했던 주제를 더 깊게 발전시킬 기회를 잃게 된다. 쉽게 말해 먹고 사느라 배운 걸 까먹게 되는 것이다. 셋째, 응용언어학 전공자들이 모델로 삼을만한 학문적 기반 자체가 매우 취약하다. 함께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흐름을 만들어 낸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6. 이런 시도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공부하고 실천하는 게 있어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평을 넓히고 지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라도 기초이론에 대한 관심은 필수다.

7. 불만만 늘어놓았지 당장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게 다 곧 개강인 탓이다. 탓할수록 다가오는 개강의 검은 손…

#응용언어학
#학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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