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망원시대 막을 내리다

Posted by on Sep 2, 2019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개강일,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 이사 준비를 끝냈다. 거실에는 책과 박스들이 즐비하다. 이사하고 짐풀고 정리하고 자리를 잡는 데까지 또 몇 주가 걸리겠지만 어쨌건 고비는 넘긴 듯하다. 지금 이 자리에 내일은 다른 이가 앉아 있겠지. 휙 하고 떠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세계는 평온하다.

돌아와 계획에 없던 결혼을 했고 합정동과 망원동에서 5년 여를 보냈다. 꽤 많은 시간강의를 했고, 5년 여 어머니의 말을 경청하고 기록했으며, 수년간의 영어교육/응용언어학 공부를 풀어낸 작은 책을 냈다. 논문쓰기 강의도 이 동네에서 기획되고 실행되었다. 종종 친구들과 학생들이 찾아와 주었고 길고양이들과 꽤나 가깝게 지냈다. 아쉬움은 남지만 내겐 과분한 시절이었다.

동네는 조금 번잡해졌고 상가가 주택가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골목이 살아 있고 이것저것 볼 것도 많지만 소음은 언제나 큰 고민이었다. 세입자 신세, 선택할 여지는 적었지만 떠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요인은 집값과 소음이었다. 그래도 떠날 때가 되니 시장의 단골 떡볶이집과 얼마 전부터 정을 붙인 구석 식당과 가끔 술떡을 사다 먹던 동네 떡집이 그리워질 것 같다. 가끔 들르던 주전부리 가게와 야쿠르트 아줌마도 보고 싶겠지. 그러고 보니 다 먹는 거구나.

가끔 옥상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한 시간 넘게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지는 해는 가장 찬란한 순간을 포착하고 밤에 자리를 내준다. 이내 망각의 어둠으로 사라질 기억들이 거짓말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밤. 속삭이듯 말을 건넨다.

안녕, 망원동.
그간 고맙고 따뜻했어.
새로운 사람들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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