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그리고 지식민주주의

과문한 탓인지 AI의 발전과 ‘지식 민주주의(knowledge democracy)’의 관계를 깊이있게 다룬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AI가 진화하면 수많은 지식 관련 업무가 자동화될 것이라는 예상이나 고도의 지식노동을 포함한 대부분의 직업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는 넘쳐나지만, 진보된 AI가 현존하는 지식수준의 불평등을 극복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지식 단계에 따라 썰을 풀 수 있는 인공지능의 발전”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다. 당연히 양자역학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태반이다. 양자역학에 대한 지식을 1000단계로 나눈다면 0에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바라는 건 대충 이런 거다. AI가 충분히 발달했을 때 양자역학의 특정 개념을 1000가지 단계로 나누어 학습자의 수준과 흥미에 따라 ‘썰을 풀어내는’ 기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 클락의 이야기처럼 충분히 진보된 AI라면 ‘마법처럼’ 수많은 개념을 엮어 재미나게 전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돈을 따라가는 법이다. 지식과 리터러시가 모두의 것이 되는 방향으로 기술이 개발되고 대규모 투자가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식의 공유는 가속화되겠지만 핵심 지식/알고리즘의 소유는 경제적, 문화적 자본을 지닌 사람들의 특권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교육을 위한 AI의 발달 또한 기본적으로 자본의 이익에 복무할 가능성이 높으며, 지식장의 근본적인 평등에 대한 관심은 ‘시늉’으로 남을 것이라는 얘기다.

나는 이것을 빈 껍데기 지식민주주의라고 부르고자 한다. 테크놀로지가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사회, 살기는 조금 편해지고 지식은 온 세상에 넘쳐나 모두의 손에 닿을지 모르지만 세계를 이해하기는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근본적 이해가 불가능함을 알아버린 사람들은 냉소로 숨어들고, 적지 않은 이들이 ‘앎의 환상’에 빠져 ‘매트릭스의 삶’을 영위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끔 ‘몰라도 되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공동체, 그리고 미디어가 필요하다. 모든 것에 대한 팩트체크를 할 수 없다면 나의 지향과 관점에 대한 방향체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점점 그게 어려워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팩트체크는 당파성이 지배하고 신뢰의 영역은 부족주의에 잠식된다. 계몽은 비웃음을 사고 사랑은 낡은 것으로 치부된다. 다양성에 대한 포용은 강조되지만 조금만 다른 언어를 써도 철저한 타자로 규정된다. AI가 이 시대를 넘어설 수 있을까? 나는 심히 회의적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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