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디외 vs. 촘스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의 핵심적 특징이 ‘생성적(generative)’이라는 데 있다고 말하면서 촘스키의 심층구조(deep structure)와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심층구조가 다양한 조작을 거쳐 여러 표층구조로 실현될 수 있듯이 아비투스가 사회 구조에 의해 형성되지만 그 자체가 다양한 행위를 생성할 잠재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반면 부르디외는 이상적 원어민 화자(idealized native speaker)를 상정하는 촘스키의 언어관을 “언어 공산주의(communisme linguistique)의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완벽하게 평등한 현실은 존재하지 않건만 촘스키와 같이 모든 화자들이 동일한 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을 가진 사회를 상정하는 것은 언어학에서 현실을 탈각하고 이상의 세계에 가두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은 언어인류학자나 비판사회언어학자들의 촘스키 비판과 맥을 같이한다.

인류학적 연구를 수행하면서 현실사회의 동학을 다루었던 사회학자 부르디외에게 있어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다양한 장(fields)에서 서로 다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상징적 자본을 가진 개개인이 소통하는 상황에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사회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몸이 또 다른 몸에게 말하는 동안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보편문법의 소유자’는 백그라운드 인지 프로세스로 상정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구체적인 사회학적 분석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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