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의 원심력과 구심력

Posted by on Oct 2, 2019 in 단상, 사회문화이론, 일상, 집필 | No Comments

2016년 촛불집회에 관련된 논문을 쓰고 있다.

논문의 주제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글을 써오면서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화두가 있다. 그것은 시위가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려는 구심력과 ‘새로운 흐름’을 분출하는 원심력을 어떻게 모두 포섭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시위가 끝나고 여기저기에 떠도는 ‘대첩’이라는 메타포를 접했다. 별로 주목하는 이들이 없는 것 같지만 이번 사건을 규정하는 ‘대첩’ 메타포를 지나칠 수 없었다. (그렇다. 직업병이다.)

‘엄청난 화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대첩’으로 사태를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단합된 힘으로 상대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대첩’을 저항의 핵심으로 본다면 광장은 일사분란한 동원의 공간이 된다.

‘대첩’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누구든 자신만의 메타포를 만들어 낼 자유가 있다.

하지만 광장이 이제껏 들려지지 않은 목소리들을 품을 수 있는 포용의 공간일 수는 없는 걸까 하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망이 모두 ‘대첩’의 멘탈리티로 포섭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꽤나 끈질기게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오’에서 이탈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던 이들이다.

모인 사람들의 숫자 만큼이나 포용할 수 있는 생각의 수가 중요한 저항들이 조직되길 빈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 그리고 그 누구의 응원도 없이 홀로 걸어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응시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