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의 힘, 전문가의 갈등, 그리고 변화의 지난함

얼마 전 도서관 강연을 하며 여러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예전부터 갖고 있던 연구 관심사에 다시 마음이 간다. 몇년 전 사회언어학 수업을 할 때였다. 모 저널 특집호를 중심으로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 학부모들의 언어교육 행태를 다루는 논문을 읽었다. (왜 석박사 통합 수업에 스무 명이 넘는 수강생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수업엔 꽤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있었고, 다수는 현직 중등 영어교사였으며, 이들 중 몇몇은 유아나 초등 저학년 연령대의 자녀를 둔 학부모였다. 우린 아티클과 뉴스기사 속 학부모 ‘군상’들, 주변 지인들의 사례들을 논의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 와중에 매우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현실 영어교육에 대한 대학원생들의 스탠스가 연구자/학부모 정체성에 따라서 사뭇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연구자로 말할 땐 조기영어교육이나 과도한 사교육에 대해 비판적이다가도 학부모로서 발언할 때에는 자신이 제기한 비판의 지점을 번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때 가장 두드러진 발화 패턴은 ‘막상 아이를 키워보니’, ‘막상 애가 유치원 갈 때가 되니’, ‘막상 내 애 이야기가 되고 보니’였다. 아이를 갖기 전 타인의 사회적 관행으로 바라본 영어교육에 대한 이해와 아이를 본격적으로 영어교육에 입문시키면서 학부모로서 갖게 된 생각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대목들에 ‘막상…’이 등장했던 것이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주제에 (‘그걸 연구해 봐야 하나?’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하다) 계속 마음이 가는 것은 이 현상 속에 사회적 변화(의 지난함)의 핵심 요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 비판적 지식을 학습한 주체마저 자녀와 관련된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주류적/상업적 논리를 따르게 되는가?’, ‘교육학적 지식은 양육과정에서 어떻게 비판되고 변형되며 수용되는가?’, 나아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자녀교육이라는 장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발달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사회언어학을 수강한 대학원생들은 영어교육을 전공하며 조기영어교육의 폐해 혹은 다소간의 무용함에 대해 알고 있었고, 아동의 영어 리터러시 교육 입문이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는 마케팅 담론을 경계하고 있었으며, 놀이를 넘어선 본격적 학습이 개개인마다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 또한 주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녀들이 ‘다들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는’ 연령대를 통과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이론적 지식과 자녀 영어교육과 관련된 의사결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영미를 중심으로 구축된 영어교육의 주류이론을 ‘손쉽게 방기하는’(거긴 거기고 여긴 여기이며 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또 다른 문제잖아) ‘현실직시파’와 ‘중심을 잡고 휘둘리지 않으며 최대한 천천히 최소의 사교육만을 시키는’ ‘뚝심소신파’를 가르게 되는데 (한 학생은 ‘내가 배운 게 있지 남들과 똑같이 키울 순 없잖아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개개인의 내면의 풍경은 상당한 변화를 겪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이같은 묘사는 자녀의 발달과정에서 연구자/대학원생 학부모가 겪게 되는 복잡다단한 변화를 매우 단순화한 것이며, 그들의 변화를 다양한 방법으로 추적한다면 이렇게 뭉뚱그릴 수 없는 사회적, 관계적, 내면적 힘이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조만간 이리저리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것. ‘애도 안키워 본’ 중등 및 대학 영어교육 전공자를 무지에서 깨워줄 분들이 필요하니 말이다.

덧.
‘막상 정규직이 되어 보니’
‘시간강사 하다가 막상 교수가 되어 보니’
‘막상 장사를 시작하고 사람 뽑는 입장이 되다 보니’

‘막상’의 힘에 대해 생각할수록 할 말이 많지만 할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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