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오프라인, 그리고 독서모임

Posted by on Nov 5,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관계를 반듯하게 가르는 건 쉽지 않다. 온라인에서 더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오프라인에서 자주 만나더라도 형식적인 네트워킹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관계의 양태나 강도는 단순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나뉘지 않는다. 온라인의 관계가 더 피상적이라고 단정하는 건 온라인에서 우정을 가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오프라인을 그저 피곤한 공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온라인을 자기 성향에 맞는 ‘따스한 사람들’로만 채워놨을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둘 사이의 차이가 없는 건 아니다. 오랜 오프라인 지인이 온라인에서 선뜻 동의하기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 그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최대한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오랜 시간 좋은 인상을 쌓아왔던 상대라 할지라도 오프라인에서의 언사가 실망스러울 경우 그간의 이미지가 오해에 기반하고 있었다고 판단하기 쉽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모두에 밝혔듯 관계를 성장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고 눈빛을 주고받으며 쌓는 관계, 자세와 제스처를 협응하며 대화를 나누는 관계는 텍스트로 쌓은 관계와 다른 측면이 있다. 전자가 후자에 비해 더욱 우월하다거나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온라인에서의 소통과 오프라인에서의 소통은 경험에 다른 질감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전자가 ‘플랫폼’으로 매개되는 관계라면 후자는 특정한 날씨, 조명, 공간, 거리, 마실 것, 의자와 탁자, 룸톤(room tone), 목소리, 간식, 웃음 등으로 매개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전자의 유대가 주로 텍스트의 얽힘에 기반하는 것이라면 후자의 유대는 무엇보다 함께 있음(co-presence)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풍성한 텍스트의 향연이 펼쳐지긴 하지만 말하는 이와 듣는 이를 동시에 감쌀 수 있는 물리적 맥락은 없다. 그에 비해 후자의 경우 대화의 풍성함과 관계 없이 만나는 시간의 구체성이 있고, 이동의 수고가 있고, 기억의 장소성이 있다.

최근 독서모임이 붐이라고 한다. 겨우 한 달에 한 번이지만 나 또한 책읽는 모임에 나가고 있다. 이런 모임이 좋은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장점을 결합하려는 시도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중 대다수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지식과 지혜를 나누면서도 사람을 만나 함께 있고 싶은 소망이 있다. 관계 속에서 텍스트가 재해석되고 재창조되는 경험을 따스한 미소를 머금은 차 한잔이 감싸주는 기억을 만들어가고 싶어한다. 이것은 홀로 읽기와는 다른 텍스쳐(texture)를 텍스트에 부여한다.

한편 책을 매개로 하는 만남은 개개인의 고유성이 너무 튀지 않게 만드는 역할도 하지 않나 싶다. 아무 이야기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아무 말이나 지껄일 수 없는 공간. 책을 정하고 토론의 룰을 정하는 순간 말과 행동의 한계가 구획되는 공간. 그렇기에 독서모임은 건강한 긴장을 갖지만 급진적 취향과 주장을 적절히 통제하는 공간이 된다.

요는, 독서모임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소통의 역동성을 적절하게 매개한 데 있고, 그 역할을 책이 해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흔히 책은 디지털 미디어와 대비되는 오프라인 미디어로 생각되지만 독서모임의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가교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아, 오해는 마시길 빈다. 온라인 커뮤니티 없이 오프라인 독서모임이 굴러가는 경우도 많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 온라인에서 종일 텍스트를 접하는 사람들이 오프라인 모임에 합류할 때 책이 훌륭한 매개자(mediator)가 된다는 뜻이다.

덧.

몇 해 전부터 생각만 해온 <First chapters> 읽기모임은 언제 시작할 수 있으려나. 관련 포스트의 일부를 옮겨놓는다.

“책 한 권을 모두 읽고 와서 생각을 나누는 방식도 좋지만 저처럼 이책 저책 유랑하길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책의 첫 장 혹은 서문을 꼼꼼히 함께 읽고 나머지를 읽을지는 각자가 결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겁니다. 책읽기를 제안한 사람은 저자 정보, 책 소개를 준비해 오구요. 첫 챕터를 돌아가며 소리내어 읽습니다. 중간중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토론이 진행되죠. 대개의 책들은 첫 장만 꼼꼼히 읽어도 저자의 집필 의도와 전체의 내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독서모임 포맷입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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