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유튜브, 그리고 리터러시 지원 생태계

1.
고교생 몇 명이 각자의 손에 책을 들고 서로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야야야 이 책 표지 봐바바. 환상이지? 책이 어떻게 이렇게 빠졌냐?”

“이 문장 끝내주지 않니? 랩 같기도 하고.”

“여기에서 이런 단어를 쓰다니. 작가가 정말 미쳤어 미쳤어.”

“와 정말 최고의 메타포다.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

“첫 문장 이렇게 시작하잖아? 근데 마지막에 또 이렇게 끝난다. 뭔가 연결된 느낌이지 않아?”

“이거 읽고 나니까 이 작가 다른 작품들도 다 읽어보고 싶다. 같이 읽어볼 사람?”

문학을 가지고 이렇게 열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처음이다. 왜냐하면 방금 내가 상상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2.
영상은 상황이 다르다.

먼저 나만해도 재미있는 영상을 보거나 하면 링크를 짝에게 보내곤 한다. ‘이거 한번 봐바바’ 하면서. 아주 긴 영상이 아니라면 링크를 공유하는 게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유튜브는 채널을 구독해서 영상을 받아보곤 한다.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이 언제 업로드되나 궁금해하기도 한다.

영상은 검색하면 관련 영상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추가 시청을 유도한다. 거기에 ‘기꺼이’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영상은 내가 써야 할 시간을 처음부터 알 수 있다. 4분 짜리 영상은 4분이면 끝난다.

3.
그렇다면 책도 이렇게 ‘소프트한’ 포맷으로 변화해야 하는가?

사실 이런 시도는 웹소설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지만 책이 말랑말랑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크게 변화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식과 이야기의 포맷이 갑자기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텍스트가 스스로의 전통을 무너뜨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리어 밀도있는 지식,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텍스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텍스트 사이를 여행하는 일을 지원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의 몸은 텍스트에 적응하기 전 영상 생태계에 먼저 적응한다. 이 점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4.
텍스트가 본연의 자리를 지킨다는 전제 하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독서교육은 인스타그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글쓰기 교육은 페이스북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학교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리터러시 교육에 있어 ‘유튜브와 같은 가공할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인가?
동네와 동네 도서관은 어떻게 모든 주민들을 위한 리터러시 생태계를 만들어 낼 것인가?
연구소와 대학은 리터러시 생태계의 빈 지점들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5.
영상도 텍스트도 아는 만큼 보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상은 지각(perception)에 기반한다. 매우 복잡한 구조가 아니라면 소리와 이미지는 지각되고 처리되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텍스트는 기호이다. 기호는 실제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며, 무언가를 상징하는(stand for)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문장을 읽어가며 해당 언어에 대응하는 개념이나 이미지를 머리 속에서 한번 더 그려내야 한다.

이 근본적인 차이가 텍스트와 영상의 소비 및 공유행태의 차이를 낳는다. 결국 텍스트를 영상과 같이 소비할 수도 공유할 수도 없다. 하지만 영상이 소비되고 공유되는 방식에서 텍스트가 배워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

6.
책은 여전히 책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리터러시를 지원하는 플랫폼의 진화는 이제부터다. 어떤 방향이어야 할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시점이 다가오는 것 같다.

페이스북 정도의 범용 플랫폼이나 서적판매와 블로그 생태계가 결합된 여러 서점 사이트를 넘어서는 리터러시 지원 플랫폼이 존재할 수 있을까?

7.
이미 많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부 사교육에서 텍스트와 영상을 아우르는 리터러시 교육이 시도되고 있다. 그런데 한숨이 나오는 건 중고교를 거치면서 읽기쓰기의 지평이 급속하게 축소된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8.
긴 텍스트를 읽어내는 능력의 중요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미디어 생태계의 성장와 소비행태가 지속된다면 텍스트를 지긋이 읽어내는 능력이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계급간 리터러시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다. 메리언 울프는 영상과 텍스트를 모두 소화해 낼 수 있는 유연한 뇌를 키우자고 말하지만, 그런 능력이 계급적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광활한 인터넷의 세계가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학습의 장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헤어나올 수 없는 구덩이가 되듯, 밀도있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능력에 있어서도 계급간의 격차가 급격히 커질 위험에 있다. 이것은 소통의 위기이며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공동체의 위기이다. 이 상황에 대해 좀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고, 그에 기반한 리터러시 지원 생태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리터러시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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