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사들을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 54: 환유(Metonymy)의 세계 (2)

Posted by on Nov 17,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환유(metonymy)를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은유(metaphor)와 비교, 대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환유와 은유는 비유적 언어(figurative language)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인지언어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언어는 환유와 은유를 통해 문자 그대로의 세계를 넘어 복잡다단한 비유의 세계를 창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인지언어학의 흐름은 환유와 은유가 쉽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합니다만, 전형적인 환유와 은유는 생성 메커니즘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은유는 두 영역간의 사상에 기반한다

먼저 은유를 봅시다. 은유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영역(domain)과 그들 사이의 사상(mapping)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최근 방영되고 있는 <동백꽃 필 무렵>의 등장인물 ‘용식이’에 대해 한 시청자가 “용식이는 호랑이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이는 전형적인 은유의 구조인 “A는 B이다”를 취하고 있습니다(아마도 가장 유명한 A=B 은유는 김동명 시인의 ‘내 마음은 호수요’겠죠).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용식이는 호랑이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이 문장은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이 경우 대략 다음의 세 요소가 사상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종열, 2003, 109쪽)

(1) 호랑이 -> 용식이
(2) 호랑이의 용맹 -> 용식이의 용맹
(3) 호랑이와 용맹간의 관계 -> 용식이와 용맹간의 관계

“용식이는 호랑이다.”라는 진술에서 동원되는 영역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호랑이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용식이의 영역입니다. 이 두 영역은 각각 근원영역(source domain)과 목표영역(target domain)의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서 ‘근원’과 ‘목표’라는 말을 살필 필요가 있는데, 근원영역은 화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즉 타겟이 되는 목표영역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영역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나무나 호수, 바다 등과 연결시킨다면, 목표영역(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은 사람이고, 근원영역(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영역)은 나무, 호수, 바다 등입니다.

이와 같은 논의에서 중요한 사실은 은유가 두 개의 영역 간의 관계설정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용식이와 호랑이는 각각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하지만, 위의 예에서 ‘용맹함’이라는 특징을 통해 연결되지요. 즉, “용식이는 용맹하다”라고 말하지 않고 “용식이는 호랑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용맹함”에 간접적으로 접근(access)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호랑이’라는 라는 단어가 문장에 등장하면서 단지 ‘용맹함’이라는 추상적 특징 뿐 아니라 호랑이의 여러 특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말하고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호랑이의 이미지가 떠오를 수도 있고, 우렁찬 호랑이 소리가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서는 호랑이의 여타 특성들이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환유 생성의 기본 원리는 인접성(contiguity)

이렇게 은유가 인지적으로 구별되는 두 영역 간의 사상을 기반으로 생성됨에 반해 환유는 개념적으로 인접한 개체들을 엮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지난 회에서 살펴본 아래 두 문장을 봅시다.

a. “버스 파업중이야. 지하철 타고 가.“
b. “빨간 모자 너무 시끄럽다. 가서 한마디 할까?“

a의 경우 ‘버스’는 ‘버스 운수 노동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둘은 개념적으로 떼어내기 힘듭니다. 실제로 운수노동자들은 버스를 운전석에 앉아 일하면서 생계를 꾸리기 때문이죠. 아래 ‘빨간 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시끄럽게 떠드는 건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지만, 그 사람과 모자는 공간적으로 인접해 있습니다. 이같은 공간적 인접은 환유 생성의 기본 원리 중 하나입니다.

공간적 인접성 외에 시간적 인접성 또한 환유 생산의 주요 원리가 됩니다. 다음 두 예를 보시죠.

c. 3년이 흘러 소설가는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d. 테잎 커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건물이 다 올라갔네?

c에서는 ‘마침표를 찍었다’는 표현이 ‘소설을 완성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편집을 거치면서 여러 번 수정되었을 수도 있지만,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은 시점과 소설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시점은 매우 가깝습니다. d에서는 ‘테잎 커팅’이 건물을 짓기 시작한 시기를 대표합니다. 유명 인사들이 테잎을 자르는 기념식을 한 것으로 건축의 시작을 표현한 것인데, 이 경우도 시간적 인접성이 환유 생성의 기본 원리로 사용되었습니다.

환유가 기본적으로 인접성에 기반한다는 주장은 구조주의 언어학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Roman Jacobson을 거쳐 최근 Peirsman와 Geeraerts에 의해 정교화되었습니다 (Littlemore, 2015, p. 14). 이들에 따르면 은유는 유사성(similarity)에 기반을 두는 반면 환유는 인접성에 기반합니다. ‘Love is a journey.’는 사랑의 과정과 여행의 과정이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는 점에 기반하고 있는 은유임에 반해, ‘We need new brains.“는 특정인과 뇌가 인접해 있다는 사실에 기반한 환유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다양다종한 비유언어를 모두 설명해내진 못하지만 비유를 설명하는 종래의 이론들에서 가장 강력한 설명원리로 제시된 바 있습니다.

<참고문헌>
이종렬. (2003). <비유와 인지>. 서울:한국문화사
Littlemore, J. (2015). Metonymy: Hidden shortcuts in language, thought and communic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덧.

2013년 연재 시작. 한 해에 여덟 개의 원고. 이번 학기에도 예외 없이 네 개의 이야기를 송고했다. 원래는 50개 정도가 되면 책으로 묶을 준비를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수년 간의 연재 중 1/3 정도는 울퉁불퉁하고 부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교사 뿐 아니라 ‘영어와 사고’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는 원고로 발전시키고 싶다. 아마도 내년 여름이면 본격적으로 작업이 가능할 것 같다.

#인지언어학이야기 #영어와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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