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한계에 관하여

Posted by on Dec 16,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1. 공감을 강조하는 담론에 대해 호의적이든 그렇지 않든 공감이 갖는 본래적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2.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진정한 공감’은 이루어질 수 없는데, 그것은 경험이라는 것이 특정한 몸이 특정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특정한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해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3. 이를 하나하나 풀면 이렇다.

(1)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고 해서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2) 특정 경험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얻는다고 해서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3) 특정 사건과 상황을 깊이 이해한다고 해서 당사자가 평생 쌓아온 이해와 해석의 방식을 체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 즉, 우리는 ‘누군가의 처지와 경험’을 상상(imagine)하는 것이지 경험(experience)하는 것은 아니다. 공감의 언어(상황을 상상해서 나오는 진술)와 상황 내에서의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상과 경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5. 문법용어를 빌리자면 공감은 기본적으로 가정법(subjunctive mood)이고, 경험은 과거시제이자 현재완료(진행형)이다. 공감하는 이는 If 절을 피할 수 없고, 동사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If I were you, I would … 에서 I는 you가 아니며 ‘were’는 ‘am’이 아니고, ‘would’는 철저히 생각의 세계에 속한다. If절이 아무리 정교하게 짜여진다고 해도 가정과 추측의 세계로부터 뛰쳐나올 수 없는 것이다.

6. 그렇다고 해서 공감을 무조건 경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감의 한계를 온전히 넘어설 수는 없지만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당 개인의 경험을 ‘그 사람 고유의 경험’으로 봄과 동시에 구조적 요인들의 분출로 보는 것이다.

7. 다시 말해 해당 경험을 순수히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요인들이 개인을 통해 세상에 뛰쳐나온 것으로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이렇게 볼 때 개인의 고유한 경험은 보편적 힘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될 수 있고, 보편성에 대한 고민에 기반한 실천을 통해 해당 경험과 유사한 경험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온전히 공감할 수 없을지라도 그 경험의 기반을 변화시킬 실천과 연대를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8. 공감의 언어는 과대평가되었다. 더욱 가치있는 일은 연대의 손길이다. 매끄럽고 완벽한 말보다는 말없이 함께 떠날 수 있는 꾸준하고 투박한 발걸음이 소중하다.

9. 결국 공감의 중요성은 응당 강조되어야 하지만 그 한계 또한 명확히 제시되어야 한다. 이것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알 수 없다고 말하는 태도와 닮았다.

10. 알 수 없어서 더욱 소중한 것들이 있다. 다 알 수 없다고 해도 함께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을 모르고 당신은 나를 모르지만 함께 궁리하는 가운데 우리 ‘사이’를, 우리 ‘사회’를 읽어낼 수 있다. 이해하는 척에서 끝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닫힌 이해가 아닌 열린 실천, 이것이 공감이 지향해야 할 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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