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풋의 양이 아니다. 경험의 깊이다.

영어학습의 초특급 키워드 ‘인풋’. <단단한 영어공부>에서도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무조건 많은 인풋’이 능사는 아니다. 최근에 학부모들을 만나면서 반복하는 메시지는 ‘인풋의 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영어를 좋아할 수 있는 계기, 언어의 숲으로 ‘빨려들어가게’ 하는 실마리를 찾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계기가 영어의 발음일 수 있다. 단어의 발음이 예뻐서, 누군가의 억양이 매력적이어서 영어가 좋아질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영화의 배역(e.g. 해리포터)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좋아하는 유튜버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노래나 챈트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림책의 내용일 수 있다. 미국 미드웨스트 지역의 백인 중산층 영어가 아니라 맨체스터의 노동자들의 ‘투박한’ 발음에 끌릴 수도 있다. 심지어 속어와 욕설이 영어로 진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간의 영어학습 담론에서는 ‘양(quantity)’이 다른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경향이 강했다. 내용과 방법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노출되느냐였다. 이렇게 ‘무조건 많이’로 대표되는 인풋 담론은 개개인의 영어에 대한 욕망(desire)를 간과했다. 인지적인 측면들을 과하게 강조하면서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면, 지각에 관련된(perceptual) 특성들을 무시한 것이다.

우리는 외국어를 배우면서 그 언어의 정보를 처리(process)하지만, 그와 함께 특정한 소리나 단어에 애착을 갖고, 누군가의 발음에 매료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며, 우리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변화시킨다. 언어학습은 지식암기가 아닌 전인적 발달과 변화과정이다.

물론 현장의 영어교수 또한 변하고 있다. 학습자들의 감정과 정체성을 고려하는 시도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평가는 ‘객관적’이고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문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차가운 머리를 갖고 언어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떨리는 마음과 소통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자신을 조금씩 변화시켜 간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언어학습에서 정서와 지각, 정체성과 욕망의 문제는 주변이 아닌 중심에 놓여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풋의 양이 아니라 경험의 깊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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