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에 대한 권리로서의 책읽기

1. 읽기는 내면의 삶(the inner life)을 만들어 냄으로써 우주를 팽창시킨다. 물리적 세계와는 별도로 상상과 기억의 공간을 생성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쓰기를 매개로 공동의 기억(collective memory)이 된다. 심리적 공간이 사회문화적, 담론적 공간으로 전화하는 것이다.

2. 읽기쓰기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주장한다면 나는 ‘문자중심주의’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욕망을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문자는 문자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춤은 춤대로, 미술은 미술대로 세계를 생성하고 연결한다.

3.그럼에도 구텐베르그 은하계 이후 인류가 쌓아온 경험과 지식은 압도적으로 문자에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내면의 삶과 공동의 기억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어온 일 말이다. 근현대 문명을 모두 긍정할 수는 없으나, 문명의 성장에 있어 문자의 비중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4. 독서교육을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내면의 세계 짓기’라는 관점으로 보는 게 적절하리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지식과 정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엄청난 양을 습득하지 않아도 내면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지혜를 키워갈 수 있다는 말, 넉넉한 영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5. 먹고사니즘은 시간을 강탈한다. 쉴 틈 없이 밀려오는 일에 몸은 지쳐간다. 내면의 삶을 가꿀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시대는 크고작은 혁명의 상상력을 고갈시킨다. 독서가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책을 집어들고 내면의 삶을 키워가는 일을 연례행사로 만드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 리는 없다.

내면의 삶에 대한 권리로서의 책읽기를 고민할 때가 아닐까 싶다.

#삶을위한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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