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논문쓰기 강의노트 여섯

1. 영어로 논문쓰기를 분석적으로 이해하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요소 5가지

(1) 영어에 대한 이해 (도구언어에 대한 이해)
(2) 논문에 대한 이해 (학문공동체의 의사소통방식이자 사고방식으로서의 논문에 대한 이해)
(3) 쓰기에 대한 이해 (쓰기행위에 대한 개념적, 실천적, 메타인지적 이해)
(4) 읽기와 쓰기에 대한 통합적 이해 (장르로서의 논문에 대한 이해 및 장르분석법 이해)
(5) 영어로 논문을 쓰는 행위에 대한 이해 (프로젝트로서의 논문쓰기 수행에 수반되는 다양한 지적, 정서적, 정보적 요인에 대한 이해)

2. ‘논문’은 없다?!

논문을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갖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논문을 막연하게 생각하고 ‘무조건 많이 읽고 쓴다’고 결심하는 것은 심히 비생산적입니다. 그보다는 논문쓰기 공부에 있어서는 특정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통용되는 논문의 구체적 성격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재즈”라는 장르는 구체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개별 재즈곡이 있을 뿐이죠. 마찬가지로 “논문”이라는 건 없습니다. ‘논문’은 개별 학문 분과 내의 다양한 논문들이 모인 집합명사로서 추상적 의미를 표현할 뿐이니까요. 그래서 막연히 논문을 많이 읽어서 잘 써보겠다는 결심은 무엇을 쓸지 대충 생각해 보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대충 생각하면 글이 대충 나옵니다.

글쓰기 공부에 있어 텍스트의 구체적인 성격, 자신이 목표로 하는 텍스트의 구체태에 천착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논문쓰기를 배우는 일은 이 구체태를 디테일하게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상세하게 논문을 상상할 수 있으신지요?

3. 논문생산과 연구자의 삶

교수들의 삶도 대학원생들의 삶도 너무 복잡해 보입니다. 읽고 생각하고 실험하고 토론하고 논쟁하고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이런 삶을 그리기엔 ‘잡일’이 너무 많은 겁니다. 개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푸념일 뿐이라 생각하기엔 정말 일이 많습니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지 진짜 모르겠어’라는 말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 이 와중에서도 잘해내는 사람들 안보여?’라고 대답하는 듯한 시대가 참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합니다. 구조와 문화의 문제들을 그저 개인의 노오력으로 돌파해야 하는 현실은 슬픕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분투하는 이들의 연대가 아니라 승리한 자들의 노획물 같은 공부를 어디에 쓴단 말입니까.

4.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논문쓰기

예술 및 스포츠 분야에서의 성공은 타직군에서 일하는 것보다 오랜 기간 강도 높은 훈련을 요구합니다. 재능의 비중도 더 크다는 것이 정설이죠. 그래서 천재들의 신화,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탄생합니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겁니다!

하지만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갖는 ‘무기’는 명확합니다. 바로 자신의 수행(performance)을 끊임없이 모니터해야만 하며, 이러한 돌아봄(reflection)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동작을 살피지 않는 무용가, 연기를 복기하지 않는 배우, 자세를 교정하지 않는 역도 선수, 연주를 녹음해 보지 않은 피아니스트가 높은 수준에 이르긴 불가능합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반성을 한다는 사실이라기 보다는 반성의 구체적인 방식입니다. 잠자리에 들며 천장을 보고 중얼거리거나 꾸준히 일기를 쓰는 일과 같이 주관성이 높은 도구가 아니라, 자세, 동작, 표정, 움직임 및 소리를 정확히 재현하는 도구들이 동원된다는 점 말입니다.

일기는 생각을 정리하거나 감정을 추스리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실제 퍼포먼스를 되살리는 데 역부족입니다. 오디오로 따지면 초저충실도(super low fidelity)라고 해야 할까요. 이 점에서 현재로서는 비디오가 가장 좋은 미디어라 할 수 있습니다. 특정 각도에서 촬영한 비디오의 한계가 있지만, 실제 일어났던 일을 있는 가장 풍부하게 재현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기록방식을 압도하는 충실도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은 전문가의 식견입니다. 같은 비디오라 해서 모두에게 같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경험과 지식의 깊이만큼 더 풍부한 정보와 함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무용가가 보는 무용 비디오와 필자가 보는 무용 비디오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에 놀랍니다. ‘이거 내 목소리 아닌 거 같아’라면서 손사래를 치기도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누군가에게 인식되는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저 또한 가끔 강의를 녹음해서 듣곤 하는데 솔직히 들어주기 힘듭니다. 더 잘하기 위해서는 강의 전체를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읽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디로 숨고 싶은 마음을 몇 시간 동안 견뎌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술에서의 피드백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실 자신의 논문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극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외가 분명 있습니다만, 제가 만나고 가르쳐 온 대학원생들의 경우 글쓰기는 굉장히 폐쇄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아주 가끔 지도교수의 피드백을 받기도 하지만, 글쓰는 과정 전반은 고립감과의 싸움인 경우가 많았죠.

언젠가 소위 ‘글로벌 대기업’의 인사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인사에 있어서 특별한 철학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특별한 철학이 있는 건 아니지만, 더 똑똑한 사람은 늘 저 밖에 있다(Smarter people are always out there.)”고 생각하며 사람을 찾는다고 하더군요. 내로라 하는 인재들이 모여 있는 회사이지만 정말 좋은 인재들은 늘 어딘가 숨어 있다는 가정을 갖고 움직인다는 말이었습니다.

저 또한 오랜 시간 홀로 쓰는 우를 범해왔습니다. 원고를 좀더 잘 고쳐서 지도교수에게 보내야지 생각합니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마음에 안들고’ 하면서 발을 질질 끕니다. 지도교수와의 미팅을 미루고, ‘다음엔 확실히 더 나은 원고를 가져가야지’하면서 자책하기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제가 간과했던 건 ‘저 밖의 누군가’가 제 글을 읽으면 제가 놓쳤던 부분을 지적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 하나로 쓰는 것보다 둘, 셋으로 쓰는 글이 훨씬 더 나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오토 크루제는 <공포를 날려버리는 학술적 글쓰기 방법>에서 “많은 사람들이 텍스트를 제출하는 데 문제를 갖고 있기에 텍스트를 계속해서 완전하게 만들려고 한다.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로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약점을 은폐하는 대신에 (그것에 대해) 묻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에 따라 논리적으로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글쓰기는 홀로 강점을 키워가는 일이 니라, 함께 약점을 보완해가는 일이 되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글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자신에게 있지만 그 과정에서 사려깊고 명민한 이들의 도움을 받는 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것만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길이죠. 쓰기를 골방에서의 고군분투가 아니라 공동체 지식의 활성화(activation), 비판적이고 협력적인 사회적 활동(social activity)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5. 대화로서의 읽기

연구자는 텍스트를 대할 때 ‘읽기’ 이외에도 ‘읽어내기’를 해야 합니다. 텍스트가 하는 말을 경청하는 행위가 (좁은 의미의) ‘read’라면 능동적으로 텍스트의 행간을 채워가며 의미를 증폭시키는 행위는 “read into”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텍스트의 의미는 주고 받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읽기든 마찬가지입니다만, ‘강의를 듣는’ 읽기와 ‘대화로서의 읽기’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읽기는 저자의 말을 듣기만 하는 읽기가 아니라 저자의 말에 우리의 말을 더하는 대화적 읽기입니다.

6. “나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재정립하는 글쓰기교육

교육과정에서 쓰기는 말하기와 함께 “표현기능”으로 분류됩니다. 사고가 외부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밀어내기'(ex-pression)라고 보는 것이죠. 하지만 쓰기, 그 중에서도 학술적 글쓰기는 흔히 말하는 <경청의 기술>을 가르치는 데 매우 효율적인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글쓰기 전문가들은 학술적 글쓰기를 설명할 때 “대화에 참여하기”(join the conversation)라는 비유를 사용합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글쓰기가 대화를 새로 시작한다기 보다는 기존의 대화에 끼어드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면 잘 끼어들기 위한 왕도 같은 건 없습니다. 아무리 지식과 견문이 넓어도 일단 유심히 들어야만 대화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재 적소에 필요한 말을 하려면 대화의 소재, 길이, 흐름, 말하는 규칙, 전개방향, 형식, 사람들의 성향 등에 대해 민감해야 하죠. ‘있어보이는 말’을 함부로 쓰는 것도 조심해야 하구요.

그렇다면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경청하고 종합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을 대치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담론과 논쟁의 흐름 속에 나의 자리를 잡는 과정, 거대한 대화의 흐름에 내 작은 목소리 하나 더하는 행위인 것이죠. 사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영화배우들이 수상 소감에서 하는 말처럼 “저는 한 거 없습니다. 그냥 다 차려진 밥상에 밥숟가락 하나 놨을 뿐이죠. 여러 동료 연구자, 작가분들 참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구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지를 금새 깨닫습니다. 짧은 시간 글쓰기에 대해 공부하면서 배운 건 글쓰기의 본령이 개인의 독창적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내 생각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재정립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글쓰기는 경청과 겸손을 가르치는 데 참 좋은 도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언젠가 이런 글들을 체계적으로 모으고 영어와 관련된 부분을 보강하여 <영어로 논문쓰기>를 컴팩트한 원고로 완성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

#영어로논문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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