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는 가벼움이 아니다

언어의 해상도는 사고의 해상도를 넘지 못한다.
사고의 해상도는 경험의 해상도를 넘지 못한다.
개인의 경험은 동시대 인류 경험의 일부일 뿐이다.
현시대 인류의 경험은 인류가 경험한 역사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무엇보다 인류의 역사는 우주의 역사에서 먼지만도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언어는,
매일 목도하는
쉼없는 언어들의 부딪침은
의미없는가?
이토록 ‘해상도 떨어지는’ 말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은
헛된 몽상일 뿐인가?

나는 이 질문의 방향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때로 언어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기에,
때로 언어는 우리를 드러내는 유일한 정체성이기에,
때로 언어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이기에,

언어를 매개로
예술이, 철학이, 과학이,
그 무엇보다
우리의 관계가 변화하기에,

언어는 더 정교해져야 하고,
더 넓어져야 하고,
더 깊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몇 개의 카드로
세상을 다 이해한 듯 소란떨지 않고,
몇 마디 경구로
삶에 달관한 듯 읊조리지 않고,
몇 권의 책으로
다 알았다는 듯 써갈기지 않는 것.

긴 글로도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삶의 진실이 있기에
긴 글을 쓰고 읽어가는 일의 고됨을
기꺼이 받아안는 일.

요약본에
자신의 생각을
송두리째 맡기지 않는 일.

이들이 소중하다 믿는다.

그 어떤 노력을 경주한다 해도
말이 삶을 오롯이 담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거대한, 아니
‘거대한’이라는 말을
우스개거리로 만들어버리는
우주라는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언어가
한없이 뭉툭하다는 걸 깨달을 때,
고로 나의 언어는 그저
‘한계의 한계’일 뿐이라는 사실 앞에 설 때
말의 무게를 깨닫게 된다.

한계는 가벼움이 아니다.
한계는 하찮음이 아니다.

언어의 한계는 그 내부를 성찰해야 할
조건이자 명령이다.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에 넣으려다가 넣지 못한 단상을 다시 더듬어/다듬어 남겨놓습니다.

2 Comments

  1. 시퍼렁어
    February 19, 2020

    말의 무게가 너무 가볍게 여겨지는 시대죠..

    Reply
    • Sungwoo
      February 19, 2020

      네 그렇죠. 저도 뭐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진 못합니다만 그런 현상이 증가하는 건 부인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Reply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