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시간을 헤아리는 논문쓰기: 경험으로서의 텍스트

전형적인 연구논문이라면 제목, 초록, 서론, 문헌연구, 방법론과 결과, 논의, 결론, 나아가 참고문헌과 부록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미 출판된 논문이라면 대개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논문은 하나의 완결된/닫힌 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논문은 하나의 완성품입니다. “논문”이라는 명사로 표현되고요. 명사의 세계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자동차’나 ‘지우개’에 시간이 들어있지 않듯 말입니다.

하지만 논문을 독자가 읽기 시작하면 시간 위에서 흘러갑니다. 읽는 행위는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텍스트를 스캔해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아니라면 우리는 1분에 기껏 몇백 단어를 순차적으로 읽어내어 내용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읽기라는 행위가 시간의 축 위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쓰기는 단지 완결된 텍스트의 생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쓰기는 독자가 경험할 시간을 상상하는 일이고, 그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또 일어나야만 하는 경험을 조직하는 활동입니다. 이런 면에서 쓰기는 텍스트를 매개로 하여 자신의 지식을 독자의 경험으로 번역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제가 강의를 하고 있는 건물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외관이 바뀌거나 방 사이의 칸막이가 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죠. 계단이 춤을 추거나 창문이 자리를 바꾸지도 않습니다. 공사가 끝난 건물은 변화하지 않는 정적 구조물입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명사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건축물이 누군가에 의해 경험될 때, 건축물은 ‘살아 움직이는’ 시간의 예술이 됩니다. 건축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시간의 축 위에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건축물은 완결된 구조가 아니라 방문자와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경험의 총체입니다.

미술관을 설계하는 건축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단지 완성품으로서의 건축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방문객들이 건축물과 만났을 때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지요. 미술관에 진입하는 길에서 어떤 생각에 잠기게 할지, 미술관 벽면의 소재가 어떤 느낌을 줄지, 정문을 어떤 방식으로 통과하게 할지, 들어왔을 때 채광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어떤 느낌일지, 천장의 높이와 조명에서 어떤 아우라를 만들어 낼지, 방문자의 동선을 어떻게 유도할지 등을 세심하게 살핍니다. 이를 통해 변하지 않는 완성품으로서의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살아 움직이는 건축물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독자의 시간을 헤아리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맞는 문장, 멋있는 표현을 동원하는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글을 읽어내려가는 독자의 호흡을, 이해의 속도를, 정서적 임팩트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글쓰기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풀어내는 행위이면서 독자의 시간을 먼저 살아보는 행위입니다.

유능한 작가는 유능한 독자입니다. 쓰면서 동시에 읽는 것이죠. 궁극적으로 좋은 작가는 쓰면서 읽고, 읽으면서 씁니다. 텍스트를 읽을 땐 읽기+쓰기를, 쓸 때는 쓰기+읽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독자에 대한 감은 어디에서 올까요? 독자를 직접 만나볼 수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전공영화’와 ‘수 구조(move structure)’라는 개념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어로논문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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