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의 스펙타클을 넘어서

Posted by on Mar 1, 2020 in 링크,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인간은 자신의 안전를 추구하기 위해 “우리 vs 적” 혹은 “Us vs. Them”의 구도를 강화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퍼뜨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에 터한다.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끝없이 경계하며 선을 그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피아식별’과 ‘적대적 태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Us”의 범위를 인류 전체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진실로 “위 아 더 월드”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교육과 미디어, 문화 전체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다.

이렇게 ‘우리’의 범위를 인류 전체로 확장하는 일은 때로 지루하고 지난하다. 무엇보다 현재의 사회경제체제에서 돈이 되지 않는다. 언론 또한 편을 가르고 욕할 대상을 만들어 내야만 ‘기사가 팔린다’. 음모론은 드러나지 않은 적을 만들어 내고, 혐오담론은 ‘선량한 우리’를 해치는 ‘사악한 그들’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며 사람들에게 파고든다. 사람들간의 섞임을 ‘불순물의 침투’와 ‘순수함의 타락’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어떻게 이 난관을 넘어설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가르고 혐오하고 저주하는 스펙터클을 막기 위해서 어떤 행동이 필요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다만 요즘 들어 부쩍 그런 분열과 혐오의 행태들이 지독하게 멋없는 거라는 걸 계속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시하고 차별하고 가르고 욕하는 일이 얼마나 스타일 빠지는 일인지,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없어보이는지 말이다.

그에 비해 연대하고 손내미는 사람들의 멋짐을 더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다. 사랑하고 차별하지 않는 사람들의 ‘있어 보임’에 대해 더 크게 이야기하고 싶다. 나도 가끔은 그런 멋진 행동을 따라하면서 아주 쪼금은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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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이 길이 광주가 가야할 길”이라는 저 말, 정말 멋짐 터지지 않나? “나눔과 연대의 광주정신으로 대구 경증 확진자들을 광주에서 격리치료하겠다”는 저 선언, ‘우리편 vs 너네편’ 가르는 사람들에 대해 시원하게 한방 먹이지 않나? 위기의 상황 속, 사랑과 연대는 한줄기 빛처럼 찬란하지 않은가?

기사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259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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