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thing”, 언어적 창의성, 그리고 시인-되기

심심찮게 들리는 표현 중에 “become a thing”이 있다. 직역하면 ‘물건/사물이 되다’는 말인데, 특정한 대상이 인기를 끌거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 때로 걱정거리가 되는 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인지언어학의 언어로 풀어본다면 위의 숙어에서 “a thing”은 물리적 개체라기 보다는 우리의 사고 속에서 개념적 공간을 점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When did celebrating birthdays become a thing?(언제 생일을 축하하는 게 널리 퍼졌나?)” 이 문장에서 가정되는 것은 ‘생일을 축하하는 일’이 관례가 아니었다가 관례화 되고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모르지만 아마도 캘린더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재미난 것은 ‘become a thing’을 일종의 명사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명사의 기능이 여럿이지만 기본적으로 ‘thing’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즉 사물을 가리키는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이 thing이 된다는 것은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 즉 명사로서의 지위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이 각기 이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나무는 줄기, 잎, 뿌리, 가지 등을 갖고 있지만 (적어도 식물학자가 아닌 나같은 일반인에게) 새로 난 뿌리와 새로 난 잎새를 묶어서 통칭하는 명사는 없다. 아침과 점심, 저녁과 밤, 새벽 등의 시간 구분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해질녘과 잠들기 직전 시간만을 묶어 부를 수 있는 명사는 없다. 우리는 세계를 구분하고 묶고 개념화하고 이름을 붙이지만 거기에는 제약이 따른다. 그 제약을 훌쩍 뛰어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호로서의 언어관습, 나아가 사회적 관행과 관념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언어적 창의성(linguistic creativity)를 키우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사람들이 이름붙이지 않는 것에 나만의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다. 즉 사람들에 의해 ‘become a thing’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자신이 ‘make something a thing’해 보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름붙이지 않은 현상과 사물에 나만의 이름을 붙여보고 그것을 마음 속으로 간직하고 키워가는 것. 여기에서 창의성이 자라난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하나의 이름(a thing)으로 부르는 것을 여럿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밤’이라고 부르는 시간을 어떻게 더 쪼개고 구획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밤을 통째로 보내지만 누군가는 밤의 탄생과 성장과 성숙과 노화와 죽음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위에서 든 예와 같이 사람들이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들을 연결시켜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다. 새로운 잎사귀와 뿌리를 합쳐 ‘나무의 새살’로 명명해 보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남들이 A라 부르는 것을 나는 B라 부른다. 왜냐면 …이기 때문이다’식의 공식을 적용하면 보다 많은 것들이 나에게 ‘become a thing’이 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become a different thing’이라고 할까.

결국 ‘become a thing’에서 얻을 수 있는 창의성의 비결은 사물의 개념과 이름의 영역을 횡단하면서 새로운 개념과 이름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가장 공들여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시인일 것이다. 그들은 이름을 붙임으로서 개념을 끌어내고, 개념을 쪼개고 분리하고 모음으로서 새로운 개념을 빚어내며, 새로운 이름을 붙임으로서 당연시되는 본질에 의문을 던진다.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작업을 배우는 기회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인지언어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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