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과 결과, 그리고 리터러시

Posted by on Mar 9,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집필 | No Comments

1. 한국사회의 가장 아픈 면 중에 하나는 특정한 현상의 원인을 찾는 데는 분주하면서도 그 원인이 더 큰 사회경제적, 제도적 맥락과 닿아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묻어둔다는 데 있다. 원인은 넘쳐나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살펴보는 일에는 게으르달까.

2. A는 B를 탓하고, B는 C를 탓하고, C는 D를 탓한다. 그렇게 탓하기의 향연은 사회를 좀먹고 합의를 지연시키고 진실을 감춘다. 이해와 분석, 성찰과 제도화는 계속 미뤄지고 탓하기와 편들기는 습속이 된다. 원인을 찾는 데 골몰하면서 그것의 역사적 형성에 대해 함구하는 사회는 게으르고 얄팍하다.

3. 무엇이든 조금 더 들여다보면 역사와 맥락, 사람이 있다. 영어로 말하면 “A cause is only skin deep (우리가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그저 한 꺼풀에 불과하다).”이라고 해야 할까. 원인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요인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원인 또한 결과인 것이다.

4. “A때문에 이 사단이 났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에 대해 응당 해야 할 응답은 “그럴 수 있겠네. 그런데 A는 어떻게 해서 생긴 거야?”일 것이다.

5. 즉, 그 말에 대해 “맞아맞아”라며 그냥 넘어갈 것인지, 얼굴을 찡그리며 속으로 ‘이런 공감능력 떨어지는 인간’을 외칠 것인지, 아니면 “그러게 나도 그게 궁금하네. 왜 그렇게 되었을까?”라고 함께 알아보자고 제안할 것인지에 따라 한 사회의 리터러시 역량이 좌우된다. 그런 면에서 리터러시는 상대와 나의 관계를 넘어 맥락과 역사를 사고하는 힘이다.

6. <삶을 위한 리터러시(가제)>에서는 대담자 선생님의 제안으로 ‘공감능력’ 대신 ‘사유역량’이라는 용어를 택했다. 상대의 입장을 그저 긍정하고 다독이는 것(‘공감’)이 아니라 그것을 보듬으면서 생각을 확장해 가는 일(‘사유’)로서의 리터러시를 상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공감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당신과 나 사이에서 무한루프를 도는 폐쇄적인 과정이라면 결국 당파주의와 뒷담화의 번성에 복무할 뿐이다.

7. 아래 첫 답글의 링크는 위의 생각에 단초를 제공한 글이다. 대구 한마음아파트의 상황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분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삶을위한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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