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

Posted by on Mar 11,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1. 얼마 전 낸 촛불집회 관련 논문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우리에게 충분한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아카이빙(archiving)’의 부재는 정부, 언론, 시민단체, 정당 모두에 해당하는 문제였다. 탄핵정국을 관통한 집회는 건국 이래 가장 큰 거리시위로 불리지만 체계적이며 풍부한 자료를 찾기는 힘들었다.

이번 사태는 어떨까. 백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그것이 실행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부디 관련자들이 이번 사건을 꼼꼼히 기록하고 면밀히 분석하고 교훈을 이끌어내고 쓸 수 있는 자원으로 배포하는 작업이 반드시 이루어지길 빈다. 무엇보다 ‘복기’에 돈을 쓰는 게 제대로 돈을 쓰는 일임을 정부와 지자체, 유관 기관 모두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2. 오래 전 한 후보의 과거 행적이 드러나면서 “대선후보”와 “돼지 흥분제”가 한 텍스트 내에 동시에 오른 적이 있다. 역겨운 내용이었다. 이로써 그는 단지 한국정치 뿐 아니라 텍스트의 역사를 오염시켰다. 오늘 아침에는 모 당이 한 기업 총수를 소환하며 기부를 종용(?)하는 포스터를 보았다. 그것 또한 기이한 언어들의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말도 안되는 말을 가능하게 하는 말같지 않은 행동들은 깊은 탄식을 부른다.

3.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영문 제목은 <The Host>이다. 일부 언론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숙주(host)를 마치 괴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어떤 확진자도 숙주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영화의 세계에서는 host가 괴물일지 몰라도 이 세계에서는 인간이라는 것. 어떤 측면에서 ‘숙주’로 여겨질 수밖에 없지만 온전한 인격체로서 대해야 한다는 것. 이 둘을 적절히 조화할 지혜를 찾아야 한다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4. <삶을 위한 리터러시> 속편으로 <재난 시대의 리터러시>를 고민해 본다.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말하고 듣고 연결되어야 하는가. 하지만 ‘재난’ 덕에 첫 책도 나오기 너무 힘들다는 건 안비밀. 작업이 길어지니 조금은 기운이 빠진다. 자연의 봄만큼 마음의 봄도 어서 왔으면 좋겠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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