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를 지지하고 지켜본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글

Posted by on Apr 9, 2020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쟁에서 사퇴했다. 역사의 한 챕터가 끝난 느낌이다. 그에 대한 호불호야 갈릴 수 있겠으나, 그가 미국 정치를 좀더 왼쪽으로 끌고 왔다는 점에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그의 운동(movement) 전의 민주당 정강과 이후의 정강은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슈퍼팩’(Super PAC)’의 지원을 받지 않고 풀뿌리 운동 중심으로 정치혁명을 이끌었다. 한계도 실수도 많았지만 나는 그 점에서 그가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사퇴가 아쉽지만 그에게서 영감을 얻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등의 정치인이 운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력은 줄어들고 동력은 약해지겠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는 후대가 짊어질 몫이다. 그를 응원했던 지난 대선을 돌아보며 그간의 쪽글 몇 개를 모아둔다.

===

2015.2.18.

“환경이 은행이라면 벌써 살렸을 것.” – 버니 샌더스
(금융) 자본주의의 두 얼굴을 정곡으로 찌르는 말인 듯.

===

2015.9.15.

2014년 오늘, 버니 샌더스에 대한 기사를 소개했다. 당시만해도 샌더스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정치인이었기에 관심을 가진 페친 또한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라고 해야 하나. 현재 버니 샌더스는 뉴 햄프셔와 아이오와 여론 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앞서고 있고, 지지율의 상승세 또한 꺾이지 않고 있다.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로서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진보정치의 신념을 지켜온 샌더스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되길 빈다.

===

2015.11.12.

UFC 세계 챔피언이자 배우인 Ronda Rousey가 버니 샌더스 지지하기로 했다는 기사. 그녀가 샌더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던진 말이 인상적이다.

“나는 버니 샌더스에게 투표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는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질 않거든요. 나는 정치인들이 외부 이익집단으로부터 선거 자금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I’m voting for Bernie Sanders, because he doesn’t take any corporate money,” Rousey told Maxim. “I don’t think politicians should be allowed to take money for their campaigns from outside interests.”)

====

2016.1.31.

예상대로 뉴욕타임즈는 힐러리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다. NYT의 독자로서 아쉬움이 크지만 단순히 ‘보수언론의 한계’라 부르고 싶진 않다. 막판 지지 선언은 NYT의 한계라기 보다는 그간 쌓아온 권력의 행사니까. 그게 샌더스가 돌파해야 할 비정한 현실이니까. 재미있는 것은 학자이면서 NYT의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은 ‘비현실적 정책’을 이유로 버니 샌더스에 맹공을 퍼부었음에 반해, 학자 출신으로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샌더스의 비전과 정책에 손을 들어주었다는 점이다. 결과에 관계없이 샌더스 지지자들의 운동이 이어지길 빈다. 아래로부터의 권력만이 진정한 정치혁명을 가능케 할테니 말이다.

===

2016.2.4.

샌더스의 주장은 여느 정치운동과 마찬가지로 대략 세 층위에서 파악할 수 있다.

1. 현재 미국은 엄청난 불평등 사회다. (하위 주장: 엄청 잘살 수 있는데 엄청 불평등하다. 충분한 돈을 가진 나라인데 의료보장과 사회안전망이 엉망이다.)

2. 불평등은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불평등은 사회경제적 구조에 의해 재생산된다. (하위 주장: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의 행태, 대자본의 선거 매수 등이 그 뼈대를 이룬다.)

3. 이 구조는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아래로부터의 정치혁명 뿐이다. (하위 주장: 나는 대기업의 돈을 원하지 않고, 그들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이를 다음과 같은 기술로 바꿔볼 수 있다.

1. 엄연한 사실에 대한 인식: 많은 이들은 기이할 정도의 불평등에 대해 무지하다.

2. 해결 가능성과 방법에 대한 인식: 불평등을 인지하더라도 정치운동에 의한 사회구조 혁신보다는 개개인의 노력, 각개전투로 해결하려 한다.

3. 운동 참여: 많은 이들은 ‘불평등의 구조가 있지만 어쩌랴, 사회가 그렇게 굴러먹은 걸’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내가 뭐 좀 한다고 바뀔게 뭐있나?’라는 생각에 그친다.

변화의 관점에서 다시 다음과 같이 진술할 수 있다.

1. 불평등에 눈뜨게 하는 가장 강력한 데이터는 무엇인가.

2. 각종 데이터를 관통하는 구조적 요인들은 무엇인가?

3. 인식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플랫폼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이런 주제들과 관련하여 선거 기간 버니 샌더스의 전략에 대해 짧게 썼던 글을 가져온다.

===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쟁에 나선 Bernie Sanders의 선거전은 그야말로 원칙에 충실한 모습이다. 자신이 누구를 위해 나왔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를 단박에 알려준다고나 할까. 두어 달 지켜본 그의 모습에서 몇 가지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1. 경제 이슈에 집중한다. – 미국 자본주의, 그 중에서도 빈부격차와 소득격차에 집중한다. 미국 자본주의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계속해서 부각한다. 이때 자주 쓰는 표현은 “지긋지긋하다.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다(Enough is enough)!!”이다.

2. 핵심 이슈를 반복 또 반복한다. – 어떤 방송에 나오든 첫 대목에서 미국의 현상황과 자신의 핵심공약을 빠르게 되짚어 준다. (나같은 경우 매일 보는 것도 아닌데 거의 암기가 될 정도가 되었다.)

3. 기억하기 쉽고 ‘충격적인’ 통계치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가장 돈 많은 월마트 소유주 Walton가의 재산은 미국민 하위 42퍼센트의 재산을 모두 합친 것과 같다는 통계다.

4. 네거티브 광고를 하지 않는다. – 그는 정치 인생에서 네거티브 광고를 찍은 적이 없다고 한다. 언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싸움을 붙이려고’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그때마다 “힐러리를 동료로서 존중하고 좋아하지만, OOO와 같은 핵심 이슈에서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힐러리는 걸프전에 찬성표를 던졌고, 나는 반대했다.” 같은 식으로 대응한다.

5. 거대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시민참여운동으로 선거를 조직한다. 소셜 미디어에서도 (투표권도 없는 나를 비롯한) 많은 ‘운동원’들이 자발적인 운동을 하고 있다.

6. “사회주의자”라는 공격에 당당히 맞선다. 북유럽의 사회보장제도가 사회주의라면, 자신은 그 사회주의를 지지하며, 북유럽이 하고 있다면 미국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대응한다. (공립) 대학까지 무상교육 실시, 의료보장제도의 획기적 확대 등이 주요 공약에 포함되어 있다.

7. 계급적 지지기반을 확실히 밝힌다. 자신은 철저히 서민과 중산층을 대표한다는 점을 하며, 이른바 ‘수퍼리치’와 확실히 선을 긋는다. 관련하여 최저임금 15달러 안이 핵심 공약 중 하나라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진심으로 버니 샌더스의 선거 혁명이 성공하길 빈다. 사진은 버몬트의 버링턴 시장이었던 81년도의 모습. 내가 생각하는 그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사진인 듯하여 가져와 보았다. ^^

===

2016.2.10.

[버니 샌더스-선거공학을 넘어선 ‘정치혁명’을 주장하다] 버니 샌더스가 후보가 되면 결국 공화당이 승리하고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고 삶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예측을 본다. 자본과 정치가 의리로 똘똘 뭉쳐 있는 현재 시점에서 이런 예측은 분명 어느 정도의 근거와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들 ‘합리적 예측가’들이 근본적으로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버니 샌더스가 자주 언급하듯 이번 선거의 이슈는 ‘이번 선거에서 누굴 뽑느냐’를 넘어 기존의 정치세력(political establishment)에 대항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형성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샌더스는 ‘정치과정(political process)’과 ‘정치혁명(political revolution)’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표를 구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자는 요청이다. 관련하여 다음 일화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언젠가 샌더스가 오바마의 가장 큰 실수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이런 대답을 한 적이 있다. (기억에 의한 것이므로 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오바마의 선거의 열기는 엄청났다. 젊은이들의 참여도 대단했다. 그러나 그는 당선되자 마자 “자 이제 여러분들의 일은 끝났습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세요. 이제 저에게 맡기세요.”라고 말했다. 이게 오바마의 가장 큰 실수다.”

그는 외교나 인권 등 한두 영역을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진정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지지자들을 스스로 해산시킨 오바마를 비판했다. 선거의 동력을 풀뿌리 민주주의, 아래로부터의 변화의 동력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지적이었다. 선거시기 이후의 정치역학, 민주적 참여의 지속성 등과 관련하여 생각할 게 많은 대목이다.

예측은 필요하다. 하지만 예측은 현재를 기준으로 한다. 운동의 본질은 현재에 기반한 예측을 바꾸는 데 있다. 샌더스의 아이오와에서의 선전, 뉴햄프셔에서의 승리는 이를 방증하지 않는가? 역사는 현실의 예측대로 걸어간 이들이 아니라 현실 밖의 가능성을 본 이들에 의해 바뀐다.

===

2016.2.17.

피케티는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느냐의 여부와 관계 없이 ‘새로운 샌더스’의 출현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나아가 샌더스의 선전을 1980년 레이건의 선거 승리 이후 확립된 정치-이데올로기 체제의 종말과 연결시켜 논의한다. Thomas Piketty: “Because he is facing the Clinton machine, as well as the conservatism of mainstream media, Sanders might not win the race. But it has now been demonstrated that another Sanders – possibly younger and less white – could one day soon win the US presidential elections and change the face of the country. In many respects, we are witnessing the end of the politico-ideological cycle opened by the victory of Ronald Reagan at the 1980 elections.”

===

2016.3.29.

수잔 새런든, 스파이크 리 등의 영화인들에 이어 희극인 새러 실버먼이 버니 샌더스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지지선언 동영상을 올린 지 18시간 만에 1천만 뷰, 1만 5천 댓글, 21만이 넘는 공유가 이루어지는 걸 보며 예술인의 정치참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2016.7.29.

난 진정 박쥐인가 보다. (지지하던 샌더스의 ‘패배’가 확정된 마당에) 여성이 대통령 후보가 된 게 큰 의미를 갖는다 생각하고 있고, 힐러리 클린턴이 다음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의 분노나, 그녀를 미워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십분 이해된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힐러리 클린턴의 강성매파적 외교관이다. 편파적이다 싶을 정도로 클린턴을 지지했던 뉴욕타임즈 마저도 그의 호전적 외교정책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

2016.9.28.

대의의 정치와 신의의 정치

여전히 나의 타임라인에는 힐러리 클린턴의 신자유주의적 세계관, 친월가 성향, 공화당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외교정책 노선에 대해 성토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이를 근거로 그들은 버니 샌더스의 힐러리 클린턴 지지와 이후의 행보를 맹비난한다. 민주당 경선에서 제시된 샌더스의 정책 노선과 대척점에 있는 힐러리 클린턴은 절대 지지할 수 없는 인물이며, 그에 대한 선거운동은 자가당착이고 배신이라는 논리다. 실제로 샌더스는 클린턴 당선을 위해, 즉 트럼프의 낙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뛸 것임을 천명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도 여전히 힐러리 클린턴의 강성매파적 외교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한다. 외교, 군사정책과 관련하여 ‘그래도 트럼프보단 낫겠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클린턴이 천안함 사건 때 항공 모함을 동해도 아닌 황해로 보내자는 주장에 동조했다는 사실은 나의 우려가 터무니없지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게다가 그가 가장 신뢰하는 외교 전략가는 무려 헨리 키신저!

아울러 많은 공화당원들이 그를 지지하고 나선 건 트럼프가 역대급 개차반이어서이기도 하지만 클린턴의 정치가 공화당의 이념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클린턴 비판자들의 주장이 단지 그에 대한 오해와 중상모략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이 점을 애써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샌더스의 클린턴 지지 행보가 제도권 정치의 정도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한다. 샌더스는 민주당 플랫폼에서 대선 후보가 되려다 실패했고, 경선의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샌더스 지지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대선에서 녹색당의 Jill Stein 등 제3후보에 투표할 것이다. 그들의 샌더스 지지가 정치세력으로서의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었기에 누구에게 투표하건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민주당 플랫폼에 자신을 던졌던 샌더스에게 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는 자연스런 선택이다 ‘아깝게 졌으니까 나가서 출마할거야’라고 했다면 팬덤에 기반한 반짝쇼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신뢰의 정치인 샌더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거라는 말이다.

몇몇 사람들은 대의(cause)가 모든 것을 변호해준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현실 정치인에게 신의와 대의는 분리할 수 없는 가치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 낙선에 힘을 쏟으면서도 <Our Revolution> 등의 단체를 만들어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샌더스의 행보를 응원한다. 나아가 클린턴(대통령)의 편파적 견해에 균형을 잡아주면서 그가 밝힌 민주사회주의적 비전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로 힘써주기를 바란다. 대의를 위해 신의를 버리지 않고, 신의에 갇혀 대의를 소홀히 하지 않는 지혜로운 정치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덧댐: ‘그래봐야 세계 초강대국의 오만함이 얼마나 바뀌겠는가’라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눈꼽만큼의 변화라도 누군가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또한 사실 아닌가.

===

2019.2.20.

버니 샌더스의 민주당 경선 출마 소식에 짝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 신기한 게, 소셜미디어 반응을 보니까 생각보다 좋아요랑 하트가 많더라. 화나요가 진짜 많을 줄 알았는데.
짝: 자기는 어떻게 했어?
나: 아무 생각 없이 ‘좋아요’ 누른 듯.
짝: 뭐야. 출마 안했으면 좋겠다면서.
나: 응. 사실 이번에는 안나오기를 바랐는데.
짝: 참나. 좋아하는 인물 기사 뜨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좋아요를 누른 거잖아.
나: 그… 그렇게 되었네.
짝: 거기 좋아요 누른 사람들 중에 자기같은 사람이 엄청 많을 거야.
나: 그렇구나. 갑자기 뭔가 다 설명이 되는 듯…
짝: 제대로 좀 해.
나: ……

오늘의 교훈: ‘바보야. 너 자신부터 돌아보고 소셜미디어 반응에 대해 해석을 하든 말든 하라구!’

버니 샌더스가 미국 정치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나오기 보다는 다른 후보를 지지하고 당선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아젠다를 실현하길 바랐다.

그럼에도 출마가 어느 정도 이해되는 것이 Joe Biden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지지를 이끌어 낼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대권도전의 유혹을 뿌리치긴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난 번 경선처럼 열심히 뉴스를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좋아요도 조심해서 눌러야지. ㅋ

관련 뉴욕타임즈 기사. 트럼프와 샌더스가 얼마나 격하게 서로를 공격하는지 보여주는 영상이 담겼다.

===

2019.12.30.

<어이없음 주의>

나: 요즘 버니 샌더스 소식 거의 안봤는데 오늘 트위터 하다가 보니 제이슨 므라즈가 집집을 돌아다니면서 샌더스 선거운동을 하고 있네.
짝: 오오 그래?
나: 응.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인 듯.
짝: (갑자기 희극적 말투로) 몇해 전에 ㅇㅊㅅ님이 전국 방방곡곡 백팩 메고 걸어서 돌아다니며 사람들 만나고 다닐 때 관심 하나도 없지 않았습니까? 둘다 유명한 사람인데 왜 한 사람은 무시하고 한 사람한테는 지대한 관심을 줍니까?
나: 아… 그 둘을… 비교하면… 비교할 사람을 비교해야…
짝: (더욱 드라마틱한 어조로 말을 끊으며) 왜 안됩니까? 둘다 유명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자기도 웃긴 듯)
나: … … …
짝: 근데 므라즈가 선거운동 한다고 문 두들기면 기분이 어떨까? 혹시 노래라도 불러주려나?
나: (희곡적인 말투를 흉내내며) 그럼 ㅇㅊㅅ님은 뭐 V3라도 깔아줍니까?
짝: 어, 그거 나쁘지 않네.
나: (단호) 사람들 다 V3 싫어해.

덧.
제이슨 므라즈가 집집을 돌며 한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 켐페인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선거풍토를 생각하면 므라즈 정도의 연예인이 호별방문을 하며 선거운동에 나서는 게 꽤 낯선 풍경으로 느껴진다. 그가 자신의 사진과 함께 남긴 트윗 전문은 “Elect an activist.”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