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전회(Critical Turns)

Posted by on Apr 26, 2020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한 연구모임에서 내 삶의 궤적과 비판적 응용언어학자로 살게 된 계기들(critical turns)에 대해 이야기했다. 밋밋한 인생이지만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진솔하게 말씀드렸고, 공부의 과정에서 무지와 안이함의 껍질을 깬 경험들을 나누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삶 자체를 주제로 한 발표는 처음이었기에 준비하면서, 또 마치고 나서 여러 생각이 스쳤다.

수년 간 모든 역량을 가르치는 일에 쏟아부으면서 논문 생산자로서의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관념이나 지위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의 양태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지금의 나는 응용언어’학자’라기보다는 응용언어학/영어교육 커뮤니케이터에 가깝다.

선생님과 학생들, 여러 학부모를 만나 ‘삶을 위한 영어교육/리터러시’ 이야기를 나눈다. 학부와 대학원 수업을 중심으로 고민을 이어가고 다양한 사회현상을 엮어 논문과 대중서의 중간 쯤 되는 글을 써낸다. 이런 일을 늘상 한다.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사교육이 자본의 논리로 영어교육을 이끌고, 대다수 국민이 영어교육 전문가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소위 ‘삶을 위한 영어교육’에 매진하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닐지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기 보다는 힘에 부친다고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읊조린다. ‘생활을 이끄는 것은 전망이 아니라 의지다.’

허나 의지는 미약하고 게으름은 달콤하고 분노는 쉬이 사그라든다. 현실은 강고하고 욕망은 집요하건만 나의 말은 이상적이며 나이브하기까지 하다. 다만 돈을 위해 이론을 알아볼 수 없는 괴물로 만들어 버리거나, 이론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잊지/잃지 않기를 바란다. 대단한 연구자는 아니어도 쓸만한 이야기꾼이 되길 소망한다.

갈수록 대학 안이냐 바깥이냐가 아니라 누구를 만나고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써내고 나누느냐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그렇게 보니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지 않다. 몸을 좀더 바삐 움직여야 한다. 무른 생각을 다져야 한다. 그래야만 한 선생님의 말처럼 누군가의 ‘곁’을 지킬 수 있다.

끝을 모르고 달려가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묻어두었던 고민들과 재회한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쓰는 사람으로서, 지식을 만들고 나누는 사람으로서, 배우는 사람으로서, 언제까지나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일상을 꾸려가야 할 것인가. 언제 혼자여야 하고, 언제 뜻을 모을 것인가. 왜 이 질문은 수십 년 반복되는가.

덧. 오늘 발표는 bell hooks의 책 <Teaching to Transgress> 11장 “Language”를 다루었다. 부제는 “Teaching New Worlds/New Words”. 조만간 나의 언어로 다시 정리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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