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없는 수사’ 등 단상

Posted by on May 5, 2020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1. “성역없는 수사를 약속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이 사회에 여전히 성역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수사하겠다”가 “성역없이 수사하겠다”와 같은 뜻이 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그러고 보면 과한 결심이 필요치 않은 담백한 사회가 좀더 잘 굴러가는 사회일지 모르겠다.

2. “성역”은 성스러운 곳이기에 수사기관의 영향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수사의 관점에서 보면 ‘성역’은 성스러움과 전혀 관련이 없다. 그냥 범죄자들의 활동영역이다. “성역”이 남아있다면 성스러운 곳이 남아있다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묵인한다는 뜻이 된다.

3. 이제 국민의 세금은 왠만하면 “혈세”라고 표현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힘들게 노동하는 유리지갑들이 내는 세금과 부동산과 임대수익을 주수입원으로 하는 이들이 내는 세금이 똑같은 혈세인가. 잘 모르겠다.

4. 얼마간 ‘확찐자’ 말장난이 유행했다. 아무런 악의 없는 농담이었고 그 말을 쓰는 분들에 대해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확진자로서 그런 글들을 볼 때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면 마음이 개운하진 않았다.

5.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 언론을 통해 사과하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사과드린다”라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진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 또한 드물었다. 이때는 ‘고개숙여 사과한다’라는 말이 진심을 담은 말이 아니라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다.

6. 새로운 책을 <유튭책집>이나 <유책집>으로 부르는 독자들을 여럿 보았다. 경제적인 명칭이긴 하나 입에 붙지는 않는다. 특히 후자의 줄임말은 왠지 내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7. ‘번번히 발목을 잡는다’, ‘발목이 잡혔다’는 표현을 볼 때마다 실제로 발목 잡혀본 경험이 있는 인구 비율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진다. 코미디에서 이걸 실사로 구현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먼산)

8. ‘넌 이제 아웃(out)이야’라고 말하며 점퍼를 옷장 안(in)에 던져넣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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