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의 대화

“오늘 연락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제가 좋은 기회로 저연차 교사의 고민과 노력을 담은 책을 집필 중인데요. “아이들의 삶에 스며드는 수업은 따로있다”라는 제목을 지닌 파트가 있습니다. 이 파트에 제가 실제로 크게 감명 받았던 교수님의 글을 인용하고 싶어서, 혹시 괜찮을지 여쭙고자 연락드립니다. 실제로 제 수업에 큰 영향을 주었던 글이라.. 허락해주시면 너무나도 감사할 것 같습니다. 제가 싣고자 하는 글은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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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n apple”은
그렇게 열심히 따라 하면서
“This is me(이게 나예요)”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진 못했습니다.

“Work hard, and you will succeed”는
숱하게 만났지만
“Unite, and you will get what you deserve”는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가정법을 배우며
“If I were a bird”를 반복했지만
“If I were an immigrant worker in South Korea”를
발화할 생각은 못 했고

“It is very difficult to master English”라고 말하며
영어라는 산 앞에서 좌절했었지만
“It is very difficult to master anything”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기억해 내지 못했습니다.

롤 플레이를 하면서
해당 역할을 앵무새처럼 따라 했었지
새로운 역할을 꿈꾸고
새로운 대본을 써볼 생각은 못했던 나날들이 있었죠.

생각하는 말,
살아 숨 쉬며 펄떡이는 말,
웃고 울고 분노하고 아파하고 손잡아 주는 말을
가르치고 배우지 못했습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는
이처럼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예문을 바꾸고
활동을 바꿉니다.

거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삶으로 나아갑니다.

배우고 표현하며
성찰하고 소통하며 연대하는 말로,
그리고 그 말이 울려 퍼질
세상으로.

당신의 가슴이
세계를 껴안는
변방으로,
경계로,

사람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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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 수업을 들었던 한 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되어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다고요. 위에서 이야기했듯 자신이 몇몇 선생님과 함께 마무리하고 있는 책에 저의 글을 인용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영광스런 일이니까요.

기뻤습니다. 7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이젠 선생님과 선생님으로 만날 수 있어서 뭉쿨했습니다. 텅빈 7년 여의 시간이 순식간에 커다란 섭리로 채워지는 듯했습니다. 써놓고 보니 조금 호들갑스럽기도 하군요.

많은 분들이 가르치는 일을 콩나무 시루에 물 붓는 일에 비유하곤 합니다. 물을 부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도통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콩나물은 무럭무럭 자라난다고요. 그렇기에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계속 물을 부어야 한다고요.

얼마 되지 않는 경력을 되돌아 보면 제가 물주는 일이나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십년 쯤 지나면 그래도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점점 더 자신이 없습니다. 어떤 게 좋은 수업일까요? 학생들이 콩나물이고 제가 물을 준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 오만한 생각 아닐까요? 그냥 함께 배우고 성장하면 되는데 제가 뭘 한다고 설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도 종종 이렇게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이들이 있어서 제가 하는 일이 아주 조금이나마 세상에 도움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무쓸모의 두려움으로부터 저를 해방시켜주는 구원의 빛 같달까요.

책이 나오면 7년 만에 학생을, 아니 선생님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직접 전해주고 싶다고 하네요. ‘코로나가 잦아들면’이라고 또 바보같은 기약을 했지만 잊지 않고 기다려 보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지만 만남의 설렘을 간직하고 걷다 보면 이 긴 여정의 끝에 다다라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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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원고 교정 후 마무리 단계라.. 책을 6월 안으로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책 나오면 교수님 한번 찾아뵈도 될까요?? 😃”

“그럼요. 물론입니다. 코로나가 극성이지만 좀 잦아들면 뵈어요. 멋진 선생님으로 성장하고 계신 것 같아 참으로 감사하고 기쁩니다. 책 마무리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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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해진 마음에 여름 밤바람이 스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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